[분석] 비트코인, 기관은 사들이는데 왜 오르지 않을까

비트코인 시장이 정체에 빠졌다. 상장사와 기관은 역대급 매수를 이어가고 있지만, 가격은 묶인 듯 움직이지 않는다. 답은 단순하다. 초창기 보유자들의 대규모 매도 때문이다.

리서치 기업 리버(River)에 따르면, 올해 들어 기업 재무부서들은 하루 평균 1755개의 비트코인을 매수하고 있다. 이미 158개 상장사가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5년 한 해 동안 기업 대차대조표에 추가된 규모는 435억 달러, 약 64만 개 비트코인에 이른다. 이 정도라면 가격이 폭등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이유는 명확하다.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 채굴하거나 초저가에 매수한 비트코인 초기 보유자, 이른바 Orginal Gangster (OG)들이 물량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장에는 “14년간 잠자던 지갑이 1000개 비트코인을 이동했다”, “초기 채굴자가 5억 달러 규모 비트코인을 매도했다”, “2009년 생성된 주소가 15년 만에 깨어났다”는 뉴스가 잇따른다. 수익률이 수백만 퍼센트에 달하는 이들에게 현금화 유인은 충분하다. 이들이 형성하는 매도 벽이 가격 상승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자금 유입도 이어지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에는 수십억 달러가 흘러들지만,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헤지펀드의 차익거래 목적이다. 순수한 장기 매수는 절반 정도에 그친다. 기업들도 채권 발행이나 우선주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직접 비트코인을 사들이지만, 이 역시 장기적으로는 부채 상환 리스크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확대는 시장 매수력 신호로 작용하고 있으며, 기관들이 거래소에 자금을 직접 송금해 비공개 매수를 진행하는 사례도 포착된다.

문제는 이 모든 매수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꼼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로운 돈이 들어오고 있지만, 오래된 돈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그보다 빠른 셈이다. 시장에서는 OG들의 물량이 어느 시점에서 고갈되는지가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ETF 유입이나 기업 매수 뉴스만으로는 가격의 전환점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다음 랠리는 새로운 자금 유입보다 오래된 물량이 사라지는 순간에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이 주목해야 할 곳은 화려한 헤드라인이 아니라 오랜 기간 움직이지 않던 지갑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