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 전환과 DPP의 부상
전 세계는 자원 고갈 및 환경 문제 대응을 위해 순환 경제 모델로 전환하고 있다. OECD는 순환경제 시스템이 2030년까지 최대 4.5조 달러 규모의 경제 성장 잠재력을 지닌다고 분석했다.
EU는 순환경제 실행의 핵심 도구로 `디지털 제품 여권(DPP)' 제도를 도입했다. DPP는 제품의 원료부터 재활용까지 전 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화하여 기록·추적하는 제품의 `디지털 신분증'이다. EU는 에코디자인 규정(ESPR)을 기본법으로 배터리, 건축자재, 섬유 등 산업군별 단계적 법제화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DPP의 성공은 공급망 참여자들의 투명한 데이터 공유에 달려있으며, 기업들은 영업 기밀 유출을 우려하여 데이터 제공을 꺼리는 근본적인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규제 대응 미비 시 벌금 부과, 제품 판매 금지, 시장 출시 제한 등의 제재가 가능하며, 이는 국내 핵심 수출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비관세 장벽이다.
영지식증명 기술을 통한 DPP 딜레마 해결
영지식증명(ZKP)은 민감한 원본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도 특정 조건 만족을 증명하는 암호화 기술로, DPP가 요구하는 투명성과 기업의 기밀 유지 필요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기업은 탄소배출량 산식 등 민감한 데이터를 직접 제출하는 대신 '기준치 충족'이라는 사실만을 ZKP를 통해 증명할 수 있다. 규제 당국은 최소한의 정보로 신뢰를 확보하고, 기업은 영업 기밀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다.
분산원장기술(DLT)과 블록체인은 데이터의 위·변조 불가능한 분산원장에 정보를 기록하여 중앙 기관 없이도 신뢰성을 보장한다. DPP 플랫폼을 DLT 기반으로 설계하면, 참여 기업이 데이터의 소유권과 통제권을 보유하는 데이터 주권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은 ZKP 기반의 관리형 서비스를 통해 복잡한 기술 설정 없이 안전하게 데이터 제출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
한국형 DPP 대응 플랫폼 전략
EU는 입법형 규제로 정책을 주도하며 Catena-X 등 업종별 데이터 스페이스를 구축 중이고, 독일과 일본은 각각 민간 가이드라인 제시 및 정부 주도 플랫폼 구축으로 상호운용성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공공 주도(민간 참여) 형태의 '추격자' 위치에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민간 주도 생태계를 구축하여 기술 및 표준 주도국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형 DPP 플랫폼의 핵심 목표는 (1) 글로벌 네트워크와의 상호운용성 확보, (2) 국내 기업의 데이터 주권 보장이다. 이를 위한 4대 핵심 방안은 다음과 같다. ① 거버넌스 체계 확립(컨트롤 타워 중심 통합 관리), ② 규제 정합성 확보(글로벌 표준과 조화되는 법률·표준 및 검증 체계), ③ 기술 기반 강화(상호운용 가능한 구조와 데이터 주권 보장 보안 기술), ④ 개방형 생태계 조성(중소기업 진입장벽 완화).
기술적으로는 AAS, DAPS, ODRL 등 글로벌 핵심 표준을 우선 검토하되, 국내 보안 법규 준수 및 중소기업 기술 장벽 완화를 고려한 한국형 표준을 병행 적용해야 한다. 분산형 데이터 교환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상호 계약에 의해 정의된 조건 내에서만 데이터 교환이 가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결론: Web3.0 산업 생태계 선도 기회
DPP 대응은 EU 수출 규제 준수를 넘어 대한민국 Web3.0 산업 생태계의 미래가 걸린 정책 과제다. DPP가 요구하는 신뢰, 투명성, 데이터 주권은 Web3.0의 핵심 철학과 일치하며, DPP 플랫폼은 이를 산업 현장에 구현하는 최초의 대규모 실증 사례가 될 것이다.
정부 및 공공기관은 데이터 스페이스 표준 기반 법제 정비, 기밀성 등급 체계 제도화, 산업 데이터 거버넌스 컨트롤타워 설치, Web3.0 코어 기술 R&D 집중 지원, 글로벌 표준화 논의 참여, 중소기업 진입장벽 해소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 데이터 상호운용성 이니셔티브 추진을 실행해야 한다.
민간 및 기업은 제품 수명주기 데이터의 디지털화와 내부 데이터 관리 체계 정립, 핵심 민감정보 비공개 증명을 위한 ZKP 등 코어 기술의 단계적 도입, 글로벌 공급망 연계 대비 DPP 데이터 포맷 통일 및 전담 인력 교육, 중소기업의 경우 관리형 서비스 활용 및 업계 컨소시엄 등 협력적 대응을 통한 비용·기술 장벽 극복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DPP·Web3.0 대응은 단순 규제 수용을 넘어, 기술 주권 확보 및 글로벌 표준 선도를 위한 적극적 투자와 실증 생태계 조성을 통해 `데이터 주권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 초기 공공 주도 실증으로 기반을 마련하되, 장기적으로는 민간 중심의 ZKP, DID 등 코어 기술 내재화를 통해 기술·표준 주도국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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