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 이상한 자산이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배당금을 주지 않고, 이자를 지급하지 않으며, 공장을 돌리지도 않는다. 워런 버핏이 "금은 아프리카에서 캐내 다시 땅속 금고에 넣는 자산"이라며 비웃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역사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질서가 무너지고, 화폐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때마다 금은 어김없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금은 성장이 아니라 '생존'에 베팅하는 자산이다
주식이 쟁기라면, 금은 곡간이다. 쟁기는 일하고 열매를 맺지만, 곡간은 이미 거둔 것을 지킨다. S&P 500은 기업의 성장과 혁신에 올라타 장기적으로 압도적인 수익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그 여정이 순탄했던 적은 거의 없다.
1973년 이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로 조정한 실질 수익률을 보면, 금과 주식은 서로 다른 계절에 빛났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시기, 인플레이션이 치솟고 에너지 위기가 세계를 뒤흔들 때 금은 급등했고 주식은 맥을 못 췄다. 반대로 1980~90년대 대안정기에는 주식이 질주하는 동안 금은 조용히 물러나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자, 금은 다시 피난처가 됐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과 전례 없는 통화 팽창 속에서도 금은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핵심은 이것이다. 금은 주식과 경쟁하는 자산이 아니라, 주식이 무너질 때를 대비하는 보험이다. 성장이 멈추고 보존이 더 중요해지는 국면에서, 금은 비로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혼돈의 시대, 금이 채권을 압도하는 순간
금과 미국 국채 수익률의 비율은 시장의 '공포 온도계'와 같다. 국채는 정부의 약속이고, 금은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를 위한 대안이다. 이 비율의 7년 이동평균을 추적하면, 정치적 혼란, 전쟁, 재정 방만이 겹칠 때마다 금이 채권을 능가하는 패턴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금은 국경을 초월한 피난처였고, 중동의 반복적인 분쟁과 오일쇼크 때마다 투자자들은 금의 확실성을 택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다시 한번 시장에 교훈을 남겼다. 권력, 무역, 화폐란 결국 취약한 구조물이라는 것. 자본은 약속이 아닌 영속성을 향해 흐른다.
다우-금 비율이 말해주는 시장의 체온
다우존스 지수를 금 1온스 가격으로 나눈 다우-금 비율은 시장이 '성장'에 베팅하는지 '보존'에 베팅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시장은 기업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고, 낮을수록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뜻이다.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 종료 시점에 이 비율은 약 40에 달했다. 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극에 달했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 인플레이션과 혼란 속에서 비율은 6 근처까지 추락했다. 2000년 IT 버블 정점에서 다시 40에 근접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락했다. 현재는 중간지대에 위치해 있다. 극단적인 낙관도, 극단적인 공포도 아닌 상태지만, 역사적으로 이 비율이 하락 추세에 접어들 때 금이 다시 주목받았다는 점은 기억할 만하다.
원자재로 측정한 금: 거북이와 토끼의 레이스
금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달러가 아니라 실물 자산으로 금을 측정해볼 필요가 있다.
금 vs 원유. 원유는 경제의 혈액이다. 산업을 돌리고, 성장을 견인하지만, 태우면 사라진다. 금은 타지 않는다. 1980년대 원유 1배럴은 금 2.5g 이상이었고, 2005년에는 4.5g까지 치솟았다. 이후 꾸준히 하락해 코로나 시기에는 0.35g까지 떨어졌다. 현재도 약 0.35g 수준으로, 금으로 환산하면 원유는 역사적으로 매우 저렴한 상태다.
금 vs 구리. 구리는 산업의 심장 박동을 반영한다. 1980년 구리 1톤은 금 180g이었고, 2006년에는 300g 가까이 올랐다.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현재 65g 이하다. AI 인프라, 전기화, 군비 확장으로 구리 수요가 폭발하고 있지만, 금으로 측정하면 구리조차 금의 보폭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금 vs 밀. 1990년대 밀 1부셸은 금 200g에 달했다. 제국을 먹여 살리고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전략 자산이다. 현재는 약 12g으로 곤두박질쳤다. 금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식량조차 역사적 최저 수준으로 저렴해진 셈이다.
금 vs 소. 1980~1995년 생우 한 마리는 금 85~115g이었고, 2001년에는 170g까지 올랐다. 2026년 초 현재는 불과 26g이다. 왕국이 흥하고 망하고,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금으로 환산한 소의 가격은 묵묵히 하락해왔다.
이 모든 비교가 말해주는 것은 하나다. 금은 단순히 '비싸진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의 가치가 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솝우화의 거북이처럼 금은 화려하지 않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
'디지털 금' 비트코인, 진짜 금을 대체할 수 있을까
토큰포스트 독자라면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비트코인은 2,100만 개라는 절대적 희소성, 탈중앙화, 국경 없는 이전이라는 특성으로 '디지털 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2009년 탄생 이후 금이 수천 년에 걸쳐 쌓아온 가치 저장 수단의 내러티브를 불과 15년 만에 재현하려 시도하고 있다.
비트코인-금 비율(BTC 1개를 사기 위해 필요한 금 온스 수)은 이 두 자산의 힘겨루기를 보여주는 지표다. 2024년 12월,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가인 12만 6,000달러를 돌파하던 시절 이 비율은 약 40온스에 달했다. 비트코인 1개를 사려면 금 40온스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2025년 내내 금값이 급등하고 비트코인이 하락세로 전환되면서, 이 비율은 불과 1년여 만에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2026년 2월 현재 비트코인은 약 6만 8,000달러, 금은 온스당 5,060달러를 넘어서면서 비율은 약 13~14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 극적인 역전의 배경에는 구조적 차이가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각국 중앙은행은 금을 적극 매수했다. 폴란드 중앙은행만 83톤을 사들였고, 글로벌 금 ETF 보유량은 상반기에만 397톤 증가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반면 비트코인 현물 ETF는 2025년 하반기부터 자금 유출이 시작됐고, 2026년에 접어들며 기관 투자자들이 순매도로 전환했다. '디지털 금'에 대한 기관의 믿음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핵심적인 차이는 위기 시 행동 패턴에 있다. 비트코인은 나스닥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며 기술주와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2026년 2월 초 미국 기술주 급락과 함께 비트코인은 한 주 만에 30% 가까이 폭락하며 6만 달러 선까지 밀렸다. 같은 시기 금은 오히려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5,000달러를 돌파했다. 시장이 공포에 빠진 바로 그 순간, 비트코인은 위험자산처럼 행동했고 금은 안전자산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줬다.
물론 비트코인의 장기적 잠재력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2024년 반감기 이후의 사이클 효과, 규제 인프라의 성숙, 그리고 비주권 자산에 대한 구조적 수요는 여전히 유효하다. 일부 분석가들은 현재의 비트코인-금 비율이 역사적 저점에 근접해 있어 오히려 비트코인의 반등 신호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금이 증명해온 것처럼, 진정한 가치 저장 수단의 자격은 상승장이 아니라 하락장에서 검증된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의 타이틀을 유지하려면, 위기의 순간에 금처럼 버텨야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시험을 통과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한국 투자자에게 주는 시사점
현재 글로벌 경제는 여러 불확실성이 중첩된 상태다.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 지정학적 긴장 지속,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 매수 확대, 그리고 탈달러화 움직임까지.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데는 분명한 구조적 이유가 있다.
물론 금이 만능은 아니다. 성장기에는 주식이 금을 압도한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으므로 기회비용도 존재한다. 그러나 역사가 반복적으로 증명하듯, 포트폴리오에서 금의 역할은 수익 극대화가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방어다.
가장 빨리 자라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오래 살아남는 것이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금이 수천 년간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