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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① "마시는 골동품입니다"…0.6평 찻집에서 세계 최대 노차(老茶) 컬렉션까지, 끽다거 34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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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이 흩어놓은 차, 한국의 창고에서 보물이 되다…진품 생차 12만 편을 지켜온 '보이차 1세대' 가문 이야기

 안성희 끽다거 대표(왼쪽)와 손성훈 케이디지티(KDGT) 대표가 서울 토큰포스트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토큰포스트)

안성희 끽다거 대표(왼쪽)와 손성훈 케이디지티(KDGT) 대표가 서울 토큰포스트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토큰포스트)

두 사람을 마주하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묘한 '균형'이었다. 한 사람은 대만에서 태어나 부모의 찻상 곁에서 자랐고, 미술을 공부하러 독일까지 갔다가 "너의 정신과 사상을 키워라"는 교수의 말에 차(茶)의 길로 돌아온 사람이다. 다른 한 사람은 스스로를 "철저하게 돈으로 본다"고 말하는 IT 사업가 출신으로, 보이차를 '마시는 골동품'이라 정의한다. 안성희 끽다거 대표와 손성훈 케이디지티(KDGT) 대표. 부부이자 사업 파트너인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서로의 문장을 이어받으며 전혀 다른 두 개의 렌즈로 같은 자산을 설명했다. 한쪽은 문화와 역사로, 다른 한쪽은 희소성과 수익률로.

끽다거(喫茶去)는 1992년 국내 최초로 보이차를 정식 수입한 '보이차 유통 1세대' 기업이다. 그리고 이 34년 차 기업이 보유한 1989년산 하관청소타 보이차를 연간 10조원 이상의 거래량을 보유한 글로벌 자산 기반 투자를 다루는 스위치원(SwitchWon)에서 보이차 RWA 기반 디지털상품권을 런칭한다.

전통 차 문화의 적자(嫡子)와 블록체인이 만나기까지, 이 가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야기는 반세기 전 대만에서 공부하던 유학생으로부터 시작된다.

■ "오래된 보이차는 오히려 중국에 없다"

보이차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부터 짚고 가자. '오래된 보이차일수록 중국 본토에 많을 것'이라는 통념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중국이 1950년대 공산화되면서 돈이 되는 것들을 수출었어요. 보이차도 그 과정에서 홍콩과 대만, 일본, 동남아시아로 빠져나갔습니다." 안 대표의 설명이다.

안성희 끽다거 대표가 서울 토큰포스트 본사에서 가문 3대로 이어진 보이차 사업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토큰포스트)

당시 홍콩에서 보이차를 대량으로 사들인 건 뜻밖에도 대형 음식점들이었다. 우롱차나 녹차는 찻잎을 매번 갈아줘야 하지만, 보이차는 찻잎을 조금씩 더해도 맛이 크게 변하지 않아 인건비가 절약됐기 때문이다. 음식점들은 보이차를 창고에 쟁여놓고 썼고, 십수 년 뒤 사업을 정리하면서 창고는 통째로 창고지기들에게 넘어갔다. 창고지기들이 나이가 들어 유산을 정리하려고 보니, 정체 모를 '검은 떡' 같은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들이 찻집을 찾아가 물어보면서 잠자던 노차(老茶)들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 찻집 인맥의 한가운데에 안 대표의 부친이 있었다.

부친은 대만에서 12년간 유학하며 찻집 주인들과 인연을 쌓았고, 태극권을 배우러 갔다가 만난 사범대학 교수에게서 보이차를 사사했다. 그 교수가 바로 훗날 '보이차 1대 종사(宗師)'로 꼽히는 대만의 등시해 교수다. 등 교수가 1990년대에 펴낸 보이차 도감은 지금까지도 시장의 '족보' 역할을 한다. 191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어떤 차들이 만들어졌는지를 정리한 이 기록에 실리지 않은 차는, 진품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는 기준이 그 책 한 권으로 세워졌다.

■ 0.6평 무료 시음에서 시작된 끽다거…"몰라서 못 마시는 것뿐"

1992년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부부에게는 하나의 염원이 있었다. 신라시대부터 차를 마시던 민족이 일제강점기와 전란을 거치며 차 문화를 잃었다는 것. "안 마셔봤기 때문에 모르는 것뿐"이라는 믿음으로, 서울 견지동 조계사 인근 0.6평짜리 공간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무료 시음을 시작했다. 주인이 앉고 손님이 앉으면 꽉 차는 공간이었다. 대만에서 커피숍들이 무료 시음 찻집으로 바뀌며 차 문화가 부흥하는 과정을 눈으로 본 경험이 바탕이 됐다.

상호 '끽다거(喫茶去)'는 "차 한잔 드시고 가세요"라는 뜻으로, 중국 당나라 조주선사의 선어(禪語)에서 따왔다. 끽(喫) 자는 단순히 '먹는다'가 아니라 음미하고 향유한다는 뜻을 품은 글자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끽다거'를 검색하면 조주선사와 이 매장, 두 개가 나란히 나온다.

대만에서 태어나 9살에 한국에 온 안 대표는 부모의 사업을 보며 자랐고, 중·고등학교 때부터 "이건 무조건 내가 할 거니까 다른 사람 주면 안 된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미술 유학을 접고 돌아와 매장에서 일하며 성균관대 동양철학 대학원에 진학했고, 일본 다도까지 1년간 배웠다. "동양 3국의 차 문화를 모두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 혼인신고 후에야 열린 창고…세무법인과 함께한 전수조사, 119종 12만 편

손성훈 대표가 이 가문에 합류한 경위는 한 편의 드라마다. IT 사업을 하다 중국 관련 유통 사업으로 영역을 넓힌 그는 "차를 모르면 중국인들과 사업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현실에 부딪혔다. 차를 배우러 찾아간 곳이 끽다거였고, 부친의 1년 차(茶) 교육 과정 8기 수료생, 즉 '제자'가 됐다. 그리고 그 집 딸과 결혼했다.

"결혼하고 혼인신고를 하니까 그제야 저를 창고에 데려가시더라고요."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몰랐던 창고였다. "보자마자 압도됐습니다. 저는 중국인들이 오래된 보이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 사람이잖아요.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양이었어요. 얼마나 있느냐고 여쭤보니, 모르신다는 거예요."

박스 단위로 적재된 끽다거의 보이차 물량. 외부 세무법인과 함께 4개 창고를 전수조사한 결과 119종, 약 12만 편이 확인됐다. (사진=끽다거 제공)

손 대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숫자 확인'이었다. 외부 세무법인과 비밀유지계약(NDA)을 맺고, 세무사와 직원들이 직접 창고 4곳을 돌며 몇 개월에 걸쳐 전수 재고조사를 진행했다. 사람 키만 한 항아리에 담긴 차까지 전부 꺼내 세고 다시 넣었다. 부모님이 '3~4만 편'으로 짐작했던 물량은 총 119종, 약 12만 편으로 확인됐다. 그것도 30년 이상 된 진품 생차만 센 숫자다. 단일 주체가 보유한 보이노차 컬렉션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게 두 사람의 설명이다. 중국의 내로라하는 컬렉터들도 많아야 수백 편, 90년대 것까지 합쳐 수천 편 수준이다.

■ "99%의 차는 오르지 않는다"…가격이 오르는 보이차의 5가지 조건

손 대표는 공학적 사고로 시장을 해부했다. "왜 어떤 보이차만 오를까. 확인해 보니 가격이 오르는 차와 오르지 않는 차가 명백하게 구분돼 있었습니다."

그가 정리한 조건은 다섯 가지다. 첫째, 야생 차나무여야 한다. 중국 윈난성(남한의 45배 면적)의 차산지에서 자생하는 15~17m 높이의 야생고차수(古茶樹) 잎만 가치가 있다. 보성 차밭처럼 허리춤 높이로 가꾼 재배차는 해당되지 않는다. 현존 최고(最古) 차나무는 수령 3700년의 '차왕수'로, 이 나무에서 딴 찻잎 2kg이 약 26억 원에 거래된 바 있다. 둘째, 생차(生茶)여야 한다. 찻잎을 쌓아 물을 뿌려 강제 발효시키는 숙차(熟茶)는 만든 직후부터 맛이 고정되지만, 생차는 세월 속에서 후발효되며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생차는 미슐랭 레스토랑이고, 숙차는 레토르트 식품입니다." 셋째, 최소 30년 이상 자연 발효돼야 한다. 넷째, 족보(provenance)에 실려 있어야 한다. 다섯째, 보관 상태다. 보이차가 과도한 습기를 먹으면 부스러기가 많이 떨어지는데, 병차 기준으로 원래 357g으로 만들어진 차가 300g을 넘기느냐 못 넘기느냐에 따라 1950년 홍인의 경우 "2g 차이로 5,000만 원" 가격이 갈린다.

수령 1700년의 윈난 야생 차나무. 성인 두 명(원 안)이 발치에 겨우 보일 만큼 거대하다. (사진=끽다거 제공)

흥미로운 건 '인증기관'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 다섯 조건을 검증해주는 공식 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 손 대표는 잘라 말했다. "없어요. 윈난성의 국가 1급 감정기관에 의뢰해 봤더니 '2000년 이전 차들은 데이터베이스가 없어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본토조차 감정하지 못하는 차. 그러나 두 사람과 홍콩 옥션 관계자들은 향과 맛으로 70% 이상 판별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제 홍콩 경매장에서도 포장을 살짝 열어 향을 맡는 것만으로 진품·가품이 가려진다. "와인은 병을 따야 상태를 알 수 있지만, 보이차는 떨어진 부스러기 하나로도 알 수 있습니다.“

■ 홍콩 경매 연 1800억 시장…"씨가 마르고 있다"

오래된 생차의 시장 규모는 홍콩 경매 시장으로 가늠된다. 보이차 전문 최대 옥션 한 곳에서만 연 4회 공개경매로 약 1800억 원이 움직인다. 매달 열리는 비공개 경매는 별도다. 경매에서 한번 가격이 결정되면 소매 시장이 그 가격을 따라 움직이는 구조다.

공급은 구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술품과 달리 보이차는 '마셔서 소모되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2010년대 초까지 경매 1번 품목(최고가 메인 상품)은 공산화 이전 가문들이 만든 호급차(號級茶)였다. 호급차가 "유니콘처럼" 시장에서 사라지자 1950~60년대 인급차(印級茶)가 그 자리를 이었다. 인급차는 공산화 이후 국영 다창(茶廠)이 만든 차로, 최고 등급에 붉은 도장을 찍은 홍인(紅印), 그 아래 남인·황인으로 나뉜다. 1950년산 홍인 한 편의 현재 시세는 보관 상태에 따라 1억 5,000만 원에서 3~4억 원에 이른다.

홍콩 폴리옥션(Poly Auction)에서 노차(老茶) 한 통이 528만 홍콩달러(약 9억 원)에 낙찰되는 모습(왼쪽)과 대나무 껍질로 포장된 노차 실물. 오래된 보이차는 홍콩 경매 시장에서 럭셔리 대체자산으로 거래된다. (사진=끽다거 제공)

그리고 팬데믹이 결정타였다. 중국 본토에서 차가 코로나 예방에 좋다는 논문이 쏟아지며 중화권 자산가들이 보유하던 노차를 대거 소비해버린 것이다. "2021년부터 처음으로 1980년대 차가 경매 1번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90년대 차가 3, 4번에 올라옵니다. 시장에 씨가 말랐다는 얘기죠." 옛 인급차는 마시고 남은 조각 5개가 2,000만 원에 경매를 시작할 정도다.

12만 편의 컬렉션, 사라지는 공급, 감정기관조차 없는 시장. 손 대표는 이 지점에서 IT 출신다운 결론에 도달한다. 음성적으로 움직이던 이 시장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면, 진품 인증과 거래 기록을 블록체인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2편에서는 세계 최초의 보이차 RWA 토큰화 — 스위치원(SwitchWon) 플랫폼 보이차 RWA 기반 디지털상품권 런칭, 화교권 패밀리오피스와 중동 국부펀드의 러브콜, 그리고 '보이차 인증기관'이라는 다음 목표를 이어 소개한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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