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X를 시작으로 인공지능(AI) 기업들이 잇따라 증시 입성을 준비하면서 월가의 ‘버블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지금의 우주·AI 투자 열풍이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직전과 닮았다는 경고가 나오는 반면, 당시와 지금을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5조 달러가 넘는 손실을 남긴 닷컴 버블의 역사가 되풀이될 것인지, 새로운 산업의 탄생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과열인지를 놓고 시장의 시각이 갈리고 있다.
버블론을 대표하는 인물은 금융 평론가 사티야지트 다스(Satyajit Das)다. 그는 최근 우주·AI 기업들의 높은 몸값이 기술력이나 재무 실적보다 투자자들의 군집심리와 과도한 기대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현실과 멀어진 기업가치
회의론자들이 가장 먼저 꺼내 드는 것은 숫자다.
다스에 따르면 닷컴 버블이 정점으로 향하던 1999년 10월, 모건스탠리가 추적한 인터넷 기업 199곳의 시가총액은 약 4500억 달러였다. 하지만 이들의 연간 매출은 210억 달러에 불과했고, 전체적으로는 62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 있었다.
주가가 기업의 실제 수익 능력보다 훨씬 빠르게 오른 것이다.
다스는 비슷한 일이 오늘날 우주·AI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약 1조800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750억 달러를 조달했다. 현재 매출의 90배, 순이익의 220배에 달하는 평가다.
그는 모닝스타 분석을 인용해 성장 가능성을 후하게 반영하더라도 스페이스X의 적정가치는 현재 평가액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오픈AI와 앤스로픽도 각각 1조 달러를 웃도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직전 투자 유치 때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기업의 실적보다 미래 기대가 더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것이 회의론자들의 판단이다.
검증된 사업과 꿈의 사업이 뒤섞였다
스페이스X는 더 이상 단순한 로켓 회사가 아니다.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과 발사체 사업에 더해 소셜미디어, AI, 궤도 데이터센터, 달 기지, 화성 식민지 계획까지 거대한 이야기가 한 회사 안에 묶여 있다.
스타링크와 로켓 발사는 이미 상당 부분 사업화됐다. 그러나 재사용 로켓의 비용 경쟁력은 계속 검증 중이고, 우주 데이터센터나 행성 간 이주는 아직 기술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구상에 가깝다.
다스는 스페이스X의 투자설명서에 등장한 “인류 의식의 빛을 별까지 확장한다”는 식의 표현을 지적했다. 기업의 수익성과 위험을 설명해야 할 문서가 사업계획서라기보다 인류의 미래를 그린 선언문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AI 기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오픈AI가 개인 이용자보다 기업 고객에 힘을 싣는 것은 무료 이용자를 유료 고객으로 전환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I 기업들이 정액 구독에서 사용량에 따라 비용을 받는 토큰 과금으로 이동하면서 기업 고객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AI 사용량에 상한을 두기 시작했고, 값싼 오픈소스 모델과의 경쟁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중국산 AI 모델이 빠르게 성능을 높이면서 미국 AI 기업들이 높은 가격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에 규제와 수출 통제, 고급 인력 부족, 반도체·전력·냉각수 확보 문제까지 겹치고 있다. 매출은 늘고 있지만 비용도 함께 폭증하고 있어 언제 안정적인 이익을 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매출 대신 새로운 지표가 등장한다
버블이 생길 때마다 기존의 평가 기준은 낡은 것으로 취급된다.
1990년대 말에는 이익보다 웹사이트 방문자 수와 회원 수가 중요하다는 주장이 유행했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오느냐가 기업가치를 결정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나타난다고 회의론자들은 지적한다. 이익과 현금흐름이 부족한 기업들이 이용자 수, 모델 성능, 위성 수, 데이터 처리량 같은 새로운 지표를 앞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다스는 스페이스X 상장 당시 한 트레이더가 “1969년 우리는 달에 사람을 보냈다. 이제 화성으로 가자”고 외친 장면을 언급했다.
일부 투자자에게 스페이스X는 주가수익비율이나 주가매출비율로 평가할 기업이 아니다. 이른바 ‘주가-우주 비율’이라는 새로운 잣대로 보면 오히려 싸다는 농담까지 나온다.
문제는 이런 논리가 기업의 실적 검증을 피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적자를 내는 기업이 흑자 기업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하면, 시장은 이익보다 꿈을 파는 기업을 선호하게 된다.
머스크를 견제할 장치는 있는가
지배구조도 중요한 논쟁거리다.
다스는 일론 머스크가 차등의결권을 통해 사실상 축출될 가능성이 없는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우주 발사체와 위성 통신, AI, 소셜미디어가 결합된 거대한 기업이 한 사람의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공개를 돕는 투자은행과 애널리스트, 거래소 역시 이해상충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장을 주관하는 은행은 기업가치가 높을수록 더 많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동시에 해당 기업의 미래 매출을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거래소가 대형 신규 상장사를 빠르게 지수에 편입하면,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는 다른 종목을 팔아서라도 해당 주식을 사야 한다.
결국 낙관적인 전망이 실제 매수 수요를 만들고, 높아진 주가가 다시 낙관론을 강화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IPO의 목적은 내부자의 현금화”
회의론자들의 결론은 더욱 날카롭다.
이번 기업공개 열풍의 진짜 목적이 새로운 사업을 위한 자금 조달이 아니라, 창업자와 초기 투자자의 현금화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위험을 뒤늦게 들어오는 일반 투자자에게 넘기는 과정이라는 주장이다.
닷컴 버블 당시에도 보호예수 기간이 끝나자 초기 투자자와 경영진의 매물이 쏟아졌다. 주가가 높을수록 창업자는 적은 지분만 팔고도 막대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고평가된 주식은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화폐가 되기도 한다. 다스는 머스크가 과거 솔라시티와 트위터, xAI 거래에서 보여준 방식이 스페이스X와 테슬라의 관계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낙관이 주가를 올리고, 오른 주가가 다시 낙관을 키우는 구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닷컴 때와 달리 이번에는 매출이 있다”
그러나 버블론에 대한 반론도 강하다.
낙관론자들이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실제 매출이다.
닷컴 버블 당시에는 제품도 매출도 없는 기업이 인터넷이라는 이름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반면 스타링크는 이미 유료 가입자를 확보했고, 기업용 AI 역시 세계 각국의 기업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
오픈AI와 앤스로픽의 수익성이 아직 불확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아무것도 팔지 못하는 회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닷컴 기업과 오늘날 우주·AI 기업을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과도한 단순화라는 반론이 나온다.
높은 기업가치 배수가 반드시 붕괴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아마존은 닷컴 버블 붕괴 당시 주가가 크게 떨어졌지만 이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클라우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부 반도체 기업도 초기에는 지나치게 비싸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매출과 이익이 빠르게 늘면서 결과적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증명했다.
현재의 주가가 비싸다는 판단과 주가가 곧 폭락한다는 주장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기업가치가 과도하다고 판단해 너무 일찍 시장에서 빠져나갔다가 장기 상승을 놓친 투자자도 적지 않다.
문제는 버블 여부가 아니라 옥석 가리기다
다만 낙관론자들도 지배구조와 이해상충 문제까지 가볍게 보지는 않는다.
스페이스X와 AI 기업들이 실제 매출을 내고 있다고 해서 현재의 모든 기업가치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실적이 있는 기업과 이야기만 있는 기업을 구분해야 한다는 데는 양쪽의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핵심은 ‘버블이냐 아니냐’라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AI와 우주산업은 실제로 세상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산업이 성장한다고 해서 그 산업에 속한 모든 기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지만 수많은 닷컴 기업은 사라졌다. 자동차가 인류의 이동 방식을 바꿨지만 초기 자동차 회사 대부분도 살아남지 못했다.
새로운 기술의 성공과 개별 기업의 성공은 다른 문제다.
시장이 가려내야 하는 것은 실제 매출과 기술력을 갖춘 소수의 승자와, 거대한 서사에 기대 몸값만 부풀린 다수의 추종자다.

디지털자산 시장도 같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우주·AI 기업을 둘러싼 논쟁은 디지털자산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AI와 우주산업에 대한 투자심리는 주식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위험자산을 향한 자금이 늘면 비트코인과 디지털자산 시장도 함께 오르고, 시장의 위험 회피 심리가 강해지면 동시에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
디지털자산 시장 역시 오랫동안 기술과 서사, 미래 가능성을 앞세워 기업과 프로젝트의 가치를 설명해왔다. 이용자 수와 거래량, 예치자산, 커뮤니티 규모가 강조됐지만 정작 지속 가능한 매출과 현금흐름은 부족한 경우도 많았다.
AI와 우주산업에 던져진 질문은 디지털자산에도 똑같이 돌아온다.
실제로 돈을 버는가. 이용자가 비용을 지불할 만큼 필요한 서비스인가. 경쟁자가 등장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창업자와 초기 투자자의 이익이 일반 투자자의 이익과 일치하는가.
기술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과 지금의 가격이 적정하다는 판단은 같은 말이 아니다.
2000년 닷컴 버블이 남긴 교훈도 그것이다. 인터넷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당시 인터넷 기업들의 가격이 틀렸을 뿐이다.
AI와 우주, 디지털자산도 마찬가지다. 미래는 올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시장이 매긴 가격까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