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식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약 19배로 유럽보다 높지만, 인공지능(AI)이 이끌 생산성과 이익 증가가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를 넘으면 주식 밸류에이션이 압박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됐다.
윌렘 셀스(Willem Sels) HSBC 프라이빗뱅크·프리미어웰스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8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미국 주식은 보이는 것만큼 비싸지 않다”고 말했다. AI 도입으로 생산성과 기업 이익이 늘어날 가능성이 현재 밸류에이션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취지다.
블룸버그는 S&P500의 12개월 선행 PER을 약 19배, 유럽 Stoxx600을 약 15배로 제시했다. 셀스는 이 격차를 유럽 증시의 단순한 추격보다 미국 기업의 이익 창출력을 시장이 충분히 평가하지 않은 결과로 해석했다.
선행 PER은 앞으로 12개월 동안 예상되는 주당순이익을 기준으로 주가 수준을 비교하는 지표다. 주가나 이익 전망이 바뀌면 배수도 달라지기 때문에 특정 시점의 밸류에이션을 보여주는 수치로 봐야 한다.
셀스는 특히 반도체 기업의 2027년 실적 전망에 대한 시장의 의심이 크다고 짚었다. 향후 주문과 기업 가이던스가 구체화되면 관련 할인 요인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시각은 HSBC가 3일 공개한 2026년 4분기 투자 전망과도 맞닿아 있다. HSBC는 AI 확산이 기술주를 넘어 전력·소재·금융·로보틱스·자동화·헬스케어·소비 서비스로 번지고 있다고 평가하며 미국과 아시아 주식에 대한 선호를 유지했다.
AI 모델 고도화와 새로운 활용처가 투자를 자극하고, 데이터센터 확대가 전력과 소재 수요를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AI 관련 수요가 일부 반도체 기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산업 전반의 설비투자와 이익 전망으로 이어지는지가 핵심이다.
반대편에는 금리 변수가 있다. 로이터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4.79% 수준으로 오른 상황에서 금리가 갑자기 5%를 넘으면 주식시장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금리가 오르면 주식의 미래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할 때 적용하는 할인율과 기업의 차입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 특히 미래 성장 기대가 큰 기술주와 AI 관련주는 금리 변화에 밸류에이션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로이터는 기업 이익 증가가 현재까지는 금리 상승 충격을 일부 상쇄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실적 발표 시즌이 끝나면 시장의 관심이 기업 실적에서 물가·금리 등 거시 변수로 옮겨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증시의 AI 기대와 금리 부담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밸류에이션을 움직이는 요인이다. AI 투자가 실제 주문과 이익으로 확인되면 높은 평가 배수를 뒷받침할 수 있지만, 금리 상승이 이어지면 그 기대가 주가에 반영되는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앞서 본지도 AI 잠재력이 미국 증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HSBC의 분석을 전한 바 있다. 이번 발언에서는 반도체 기업의 2027년 실적 전망과 10년물 금리 5% 수준이 추가적인 판단 기준으로 제시됐다.
국내 투자자에게도 미국 기술주와 반도체주의 밸류에이션 변화는 관련 업종의 투자심리와 연결될 수 있다. 다만 미국 시장의 선행 PER과 금리는 시점에 따라 변하는 지표인 만큼, 단일 수치만으로 주가 방향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결국 시장이 확인해야 할 것은 AI에 대한 기대 자체보다 실제 주문과 가이던스, 그리고 이익 추정치의 변화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에 접근하는지와 AI 투자가 기업 실적으로 이어지는지가 향후 밸류에이션을 가를 핵심 요소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