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최근 발표한 ‘디지털 자산 보고서’가 글로벌 결제 시스템 현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이번 보고서는 총 166페이지 분량으로, 블록체인 기반 국경 간 결제 프로젝트와 중심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의 역할을 세부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비공개 부문의 혁신을 강조하면서도 정부의 개입을 배제하지 않은 기조가 눈에 띈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서 비롯됐다. 해당 명령은 모든 형태의 CBDC 도입을 전면 금지했으며, 이를 토대로 백악관 직속 태스크포스인 '대통령 직속 실무그룹’이 설립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주요 금융 규제기관은 배제됐고, 그 배경에는 해당 기관들에 대한 불신과 견제가 깔려 있다.
초기에는 이번 금지 조치가 소매형 CBDC와 도매형 CBDC 모두에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최근 하원에서는 '반(反) CBDC 감시법'이 통과되면서 소매형 CBDC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음이 분명해졌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 간 결제에 활용되는 도매형 CBDC는 여전히 허용될 여지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이는 미국이 국제 결제 인프라 현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보고서는 도매형 CBDC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해갔지만, 유럽중앙은행(ECB), 스위스 국립은행(SNB) 등과 함께 국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주요 국가들의 움직임을 고려했을 때, 국경 간 결제 시스템에서의 토큰화된 중앙은행 자금 사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이는 향후 미국 참여 여부에 따라 글로벌 지불 인프라의 주도권이 요동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미묘한 정책 변화는 스테이블코인, 토큰화된 예금, 분산원장기술(DLT)을 결합한 복합적 결제 플랫폼 구상에 있어 미국의 정부 정책이 민간 부문, 특히 글로벌 은행과 핀테크 기업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깊이 있는 분석을 요구한다. 주요 금융기관이 추진 중인 프로젝트 아고라(Project Agora), 스위프트(SWIFT) 기반의 실시간 결제 인프라 등은 모두 도매형 CBDC와의 연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한편, 이번 보고서는 디지털 자산 전반에 대한 규제 권한의 범위 재설정과 국제 협력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정책 방향 전환이 글로벌 결제 산업의 균형추를 움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향후 도매형 CBDC를 허용하는 범위와 해석 여하에 따라, 미국이 국제 금융 시스템의 디지털화 흐름에 동참할지 아니면 고립될지는 주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 주도를 강조한 백악관의 기조는 긍정적인 시그널이나, 실질적인 제도화 이전까지는 시장에 혼란을 남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