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연방 증권법을 암호화폐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해석 지침을 내놓으면서, 10년 넘게 이어진 ‘증권성’ 논쟁이 제도 논의의 새 국면을 맞았다. 토큰을 일괄적으로 단정하기보다 ‘분류 체계’와 ‘투자계약’이라는 두 축으로 판단 기준을 제시해, 향후 토큰 발행과 상장, 유통 전략 전반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SEC는 18일(현지시간) 공개한 해설 문서를 통해 암호화폐를 크게 ‘토큰화 증권(tokenised securities)’과 ‘비(非)증권 암호자산(non-security crypto asset)’으로 구분했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이 토큰이 증권인지 아닌지”를 두고 기술적 특성만으로 결론을 내리려는 시도와, 판매 방식까지 봐야 한다는 반론이 충돌해 왔는데, SEC는 이번 지침에서 후자에 무게를 실었다. 토큰의 성격뿐 아니라 발행·판매·마케팅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무엇을 약속했는지가 규제 적용의 핵심 변수라는 취지다.
폴 앳킨스(Paul Atkins) SEC 위원장은 워싱턴DC에서 열린 DC 블록체인 서밋 연설에서 “SEC가 이 질문에 대해 지속적으로 명확성을 제공하지 못했던 실패는 끝났다”고 밝혔다. 그는 SEC가 ‘토큰 분류 체계(token taxonomy)’와 ‘투자계약(investment contract)’ 해석을 함께 운용해 심사·집행의 일관성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국제 주요 매체들도 이번 조치를 ‘규제 명확성의 전환점’으로 평가하며, 과거 강경 집행 중심 접근에서 정책 지침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에 주목했다.
비증권 암호자산 4분류 제시…디지털 상품 예시에 BTC·ETH·SOL·XRP·DOGE
SEC는 비증권 암호자산을 다시 4개 범주로 쪼갰다. ‘디지털 상품(digital commodities)’, ‘디지털 수집품(digital collectibles)’, ‘디지털 도구(digital tools)’, ‘결제용 스테이블코인(payment stablecoins)’이다. 특히 디지털 상품의 예시로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솔라나(SOL), XRP(XRP), 도지코인(DOGE) 등을 명시해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다. 비증권 암호자산을 기능별로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공통 언어’를 SEC가 처음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솔라나 정책 연구기관 솔라나 정책 연구소(Solana Policy Institute)의 설립자 겸 CEO 밀러 화이트하우스-레빈(Miller Whitehouse-Levine)은 해외 매체 인터뷰에서 이번 정리가 “10년 동안 요구해온 바로 그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업계는 암호자산이 전통 증권과 다른 속성을 지닌 만큼, 기존 틀로만 재단할 경우 혁신을 위축시키고 불확실성을 키운다고 주장해 왔다. SEC의 이번 분류 체계는 이런 논쟁을 제도권의 언어로 정리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결정타는 ‘투자계약’ 판단…비증권이라도 판매 구조에 따라 증권법 적용
다만 SEC는 ‘비증권 암호자산’이라는 꼬리표가 곧바로 규제 리스크의 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앳킨스 위원장은 “증권이 아닌 암호자산이라도 ‘투자계약’의 일부로 제공·판매된다면 연방 증권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비증권 암호자산으로 분류되더라도, 거래 구조와 마케팅이 투자계약에 해당하면 증권 규제가 작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SEC 문서(68쪽)는 투자계약 해당 여부가 발행자(issuer)가 투자자에게 제시한 약속과 기대 형성 방식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수익을 보장하는 듯한 표현, 특정 주체의 노력으로 가격 상승이나 수익이 예상된다는 암시, 판매 조건과 배분 구조, 홍보 문구 등이 종합적으로 판단 요소가 될 수 있다. 화이트하우스-레빈도 “진짜 핵심은 토큰 분류표 자체가 아니라 ‘투자계약 분석’”이라고 짚으며, 발행·유통 과정의 커뮤니케이션이 규제 지형을 바꿀 수 있다고 봤다.
이 같은 접근은 토큰 발행사와 거래소, 마켓메이커 입장에서 실무적 과제를 분명히 한다. 기술적 분산성만 강조하기보다, 판매 단계에서의 문구·약관·보상 구조가 향후 법적 성격을 좌우할 수 있어 내부 준법 체계를 다시 짜야 한다는 의미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코인데스크 등도 토큰 분류 체계와 투자계약 해석이 결합되면서, 미국 시장에서의 토큰 발행·상장 전략이 재편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 기조·의회 ‘클래리티 법안’과 맞물려…지침의 ‘가변성’도 변수
이번 지침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디지털 자산 시장 워킹그룹 출범, SEC 크립토 태스크포스 가동 등 규제 프레임워크가 재설계되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비트코인(BTC) 현물 ETF 승인 확대, 중개인 자산 보관 규정 현대화 논의 등과 맞물리며, 미국 내 ‘규제 명확성’이 자본 유입과 산업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로이터와 블룸버그는 특히 정책 기조 변화가 시장에 주는 신호에 주목하며, 상품 규제 당국과의 조율 가능성을 함께 거론했다.
동시에 SEC 스스로도 지침의 한계를 인정했다. 앳킨스 위원장은 확립된 법 해석은 향후 위원장 교체 등 정치적 변화에 따라 쉽게 뒤집힐 수 있다며, 지속 가능한 기준은 결국 의회의 포괄적 시장 구조 입법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상원에서 논의 중인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이 이런 배경에서 다시 주목받는다. 팀 스콧(Tim Scott) 상원 은행위원회 위원장은 행사장에서 조만간 업데이트된 초안을 공개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반응은 대체로 환영 쪽에 쏠렸다. 가상자산 벤처캐피털 패러다임(Paradigm) 정부정책 담당 부사장 알렉산더 그리브(Alexander Grieve)는 소셜미디어에 상징적인 찬사를 남기며 의미를 부각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해석 지침’이 입법만큼 강한 안전판이 될 수 없다는 점도 함께 본다.
결국 SEC가 제시한 ‘토큰 분류 체계’와 ‘투자계약’ 판단이 의회의 시장 구조 법안과 어떤 형태로 정합성을 이룰지가 관건이다. 규제 명확성이 높아질수록 미국 시장의 토큰 발행·상장·유통 실무가 재정렬되고, 그 파급은 글로벌 크립토 시장의 자금 흐름과 프로젝트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리드 구간에서 제시된 ‘비증권 암호자산’ 틀과 ‘투자계약’ 기준이 실제 집행과 입법으로 이어질지, 시장은 다음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 시장 해석
- SEC가 ‘토큰이 무엇인지(분류체계)’와 ‘어떻게 팔렸는지(투자계약)’를 결합해 증권성 판단 프레임을 재정립하며, 규제 논쟁이 ‘토큰 자체’에서 ‘거래/판매 구조’로 더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졌습니다.
- 동일한 토큰이라도 발행·판매·유통 과정(마케팅, 기대수익 유인, 운영 주체의 역할)에 따라 규제 결론이 달라질 수 있어, 프로젝트/거래소 모두 컴플라이언스 비용과 상장·유통 전략의 재조정이 예상됩니다.
- 시장은 비트코인(BTC)·이더리움(ETH) 등 상대적으로 비(非)증권으로 분류될 여지가 큰 자산과, 판매·배포 방식 논란이 큰 토큰을 구분해 리스크 프리미엄을 달리 반영하는 방향으로 구조가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 전략 포인트
- 투자자: ‘토큰 명칭/기술’보다 ‘판매 방식(사전판매, 락업/언락, 리워드, 수익 약속성 발언, 재단/팀의 가격 부양 기대 조성)’을 함께 점검해 규제 리스크를 판단하세요.
- 프로젝트/발행사: 토큰 설계(분배·인센티브)와 커뮤니케이션(수익 기대를 직접/간접 유도하는 문구)까지 포함한 증권성 리스크 점검이 핵심이며, 유통 단계별(프라이머리·세컨더리) 통제를 문서화할 필요가 커졌습니다.
- 거래소/플랫폼: 상장 심사에서 ‘기술·분산성’뿐 아니라 ‘과거 판매 이력/마케팅/운영주체 관여도’에 대한 실사(DD) 비중이 확대될 수 있어 내부 체크리스트 고도화가 필요합니다.
📘 용어정리
- 토큰 분류체계: 토큰의 기능·권리·사용처(결제형, 유틸리티, 거버넌스 등)를 기준으로 성격을 구분하는 틀
- 투자계약(Investment Contract): 금전 투자 + 공동사업 + 타인의 노력에 따른 수익 기대 등 요건을 충족하면 증권으로 볼 수 있는 개념(미국에서 주로 하위(Howey) 테스트로 판단)
- 증권성 판단: 특정 토큰/거래가 증권 규제 대상인지 여부를 가르는 기준으로, ‘자산 자체’뿐 아니라 ‘발행·판매·유통 방식’이 핵심 변수로 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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