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회가 ‘크립토 기업 디뱅킹’ 문제를 정조준했다. 은행 계좌 개설 거부와 결제 차단이 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 속에, 규제 체계와 금융 접근성 간 충돌이 시험대에 올랐다.
영국 의회 내 초당적 암호화폐·디지털자산 그룹(APPG)은 22일(현지시간) 은행들이 크립토 기업에 계좌 개설을 거부하거나 결제를 차단하는 이유를 조사하는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공동 의장인 디드코트의 베이지 경(Lord Vaizey)과 노동당 하원의원 구린더 싱 조산(Gurinder Singh Josan)이 주도하며, 서면 의견은 8월 31일까지 접수된다. 최종 권고안은 금융감독청(FCA)의 ‘암호화폐 의무 규제’ 시행(2027년 10월 25일) 이전에 발표될 예정이다.
은행 문턱에 막힌 크립토 산업
조사 범위는 기업 계좌 개설과 유지의 어려움, 송금 한도 제한, 결제 차단, 그리고 은행의 리스크 적용이 ‘비례적’인지 여부까지 포함된다. 미국, 홍콩, 호주, 유럽연합(EU)과의 정책 비교도 병행한다.
APPG는 “크립토 및 디지털자산 기업들이 영국 내 은행 서비스 접근에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합법적 사업 운영에 필수적인 금융 인프라가 막히면 투자와 혁신, 장기 성장 모두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규모도 적지 않다. 2026년 1월 영국 크립토자산 비즈니스 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영국 은행들이 거래소로 향하는 결제의 약 40%를 차단하거나 지연시켰다. 한 플랫폼에서는 2025년에만 약 10억 파운드 규모의 거래가 거절된 것으로 집계됐다. 80%의 거래소는 고객 불편이 증가했다고 답했고, 70%는 1년 전보다 은행 환경이 더 ‘적대적’이라고 평가했다.
규제는 완화됐는데, 접근성은 왜 여전한가
이 같은 현실은 정부 입장과도 엇갈린다. 2026년 3월 재무부 경제차관 루시 리그비(Lucy Rigby)는 “인가받은 크립토 기업이란 이유만으로 금융 제한을 받아선 안 된다”고 의회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FCA 등록 기업들이 여전히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배경이 이번 조사 핵심이다.
조사는 최근 확정된 FCA의 크립토 규제 프레임워크와도 맞물린다. 인가 신청은 2026년 9월 시작되고, 2027년 10월 25일부터 전면 의무화된다. 규제 ‘틀’은 갖췄지만, 은행 서비스 접근이 계속 막힌다면 제도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디뱅킹’ 논쟁과 비교
해외에서도 유사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크립토 기업들이 은행 제한을 ‘오퍼레이션 초크포인트 2.0’에 비유해왔다. 크라켄은 당시 감사를 중단한 회계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2200만 달러(약 323억 원, 환율 1달러=1469.30원) 합의를 끌어냈다. 호주에서는 코인베이스가 은행의 과도한 제한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영국 APPG는 이러한 해외 사례를 비교 분석해, 경쟁국 대비 정책 일관성과 산업 친화성을 점검할 계획이다.
정권 교체 속 정책 방향 가늠 시험대
이번 조사는 정치적 전환기와도 맞물린다. 앤디 번햄이 총리에 취임하고, 존 힐리가 재무장관을 맡은 직후다. 법률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디지털자산과 금융 서비스를 둘러싼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을 제시할 수 있을지 글로벌 금융권이 주시하고 있다고 본다.
서면 제출은 7월 21일부터 8월 31일까지 은행, 결제, 핀테크, 크립토 전반에서 받는다. 이후 APPG는 2027년 10월 이전 권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업계는 FCA 등록 기업에 대한 ‘일괄 차단’ 대신, 개별 리스크 평가 방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조사는 영국이 ‘글로벌 디지털자산 허브’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규제 정비와 금융 접근성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다면, 제도적 진전도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