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광화문에서 또다시 문화재를 훼손하는 낙서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가문화유산 관리체계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건은 8월 11일 오전 8시 10분쯤 발생했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 광화문 석축 인근을 순찰하던 관리소 직원이 한 남성이 돌 위에 낙서를 하는 장면을 발견하고 현장에서 제지했다. 해당 인물은 79세 김모 씨로 알려졌으며, 발견 직후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김 씨는 광화문 정면에 위치한 무사석 부위에 검은 매직으로 ‘국민과 세계인에 드리는 글’이라는 문구를 시작으로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내용까지 쓰려다 제지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낙서의 크기는 가로 약 1.7미터, 세로 0.3미터로 확인됐다.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및 보존처리 관계자들은 현장에 즉시 투입돼 제거 작업에 착수했다. 초기에는 일반 약품을 사용했지만, 낙서가 석재 표면 깊숙이 스며들어 레이저 장비까지 동원해야 했다. 작업은 약 7시간에 걸쳐 진행됐으며, 낮 1시에 예정돼 있던 광화문 파수 의식은 취소되고, 수문장 교대식은 축소된 형태로 치러졌다. 문화재 훼손 방지를 위한 관리 대책에도 불구하고 대낮에 광화문 한복판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하자, 현장 관리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23년 말 발생한 스프레이 낙서 사건 이후 1년 8개월 만에 벌어진 두 번째 문화재 훼손이다. 당시에는 10대 청소년이 돈을 미끼로 낙서를 사주받아 영추문 주변에 오염을 남겼으며, 복구에만 1억 3천여만 원이 소요됐다. 사건 이후 국가유산청은 야간 순찰 확대, CCTV 증설 등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유사 범행이 되풀이되면서 제도적 대응의 실효성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문화유산보존법에 따르면 이런 행위는 원상 복구 명령과 함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국가유산청은 김 씨에게 법적 조치를 예고하며 낙서가 제거된 지점을 일주일간 집중 관찰할 방침이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현장 대응은 신속했지만, 문화재는 단 한 번의 훼손에도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며 “유사 행위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낙서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은 상징적인 문화재조차 완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관광객이 밀집하는 장소일수록 더욱 철저한 감시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반복되는 유사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단순 물리적 감시뿐만 아니라 문화재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경고음이 또 다른 대책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