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격자 구조가 겹칠 때 생기는 특유의 무늬인 ‘무아레 패턴’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처음으로 구현됐다. 고도로 설계된 나노 물질을 활용해 작은 분자 구조에서도 무늬의 주기와 형태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화학과 최원영 교수 연구팀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연구진과 공동으로,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활용해 무아레 패턴의 주기와 모양을 정밀하게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8월 18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8월 13일자에 게재됐다.
무아레 현상은 우리가 일상에서 두 장의 모기장을 포개거나, 화면을 카메라로 촬영할 때 자주 보게 되는 물결 무늬를 말한다. 그러나 나노 수준으로 작아지면 이 단순한 착시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히 나노 소재인 그래핀처럼 원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된 물질 위에서 무아레 패턴을 조절하면, 전자 특성이 크게 달라지는 트위스트로닉스(twistronics)의 핵심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MOF라는 나노 구조물이다. MOF는 금속 이온과 유기 분자가 규칙적인 그물망 형태로 결합된 물질로, 유기체의 종류나 길이를 바꾸는 방식으로 구조 자체를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연구팀은 종이처럼 얇은 MOF 층을 만들어, 상하층이 미세한 각도 차이를 두고 겹치도록 조절했다. 이후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겹치는 각도와 유기 분자의 구조에 따라 무아레 무늬의 주기와 형태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것이 밝혀졌다.
최원영 교수는 “MOF는 분자 수준에서 구조적 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마치 다이얼을 돌리듯 무늬를 원하는 대로 제어할 수 있다”며, “이는 향후 트위스트로닉스 기술을 넘어 새로운 종류의 양자 소재 개발에도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무아레 패턴의 제어 난제를 풀 실마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이 기술이 더욱 정교해진다면 나노 전자소자나 양자 컴퓨터의 핵심 소재 개발로 연계될 가능성도 있어, 소재·전자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