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 전용으로 고성능 인공지능(AI) 칩을 새롭게 개발하고 있다. 이는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로 성능이 제한된 기존 칩들을 보완하면서도, 규제 기준을 충족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차세대 ‘블랙웰(Blackwell)’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B30A’ 칩을 개발 중이다. 이 칩은 기존 중국용 AI 칩보다 성능이 뛰어나면서도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를 우회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블랙웰은 엔비디아가 올해 공개한 최신 설계 방식으로, 고성능 AI 연산에 최적화돼 있다.
이번에 개발 중인 B30A는 핵심 부품을 하나의 실리콘 조각 위에서 작동시키는 ‘싱글 다이(single die)’ 구조를 채택한다. 이는 기존 고성능 칩에 주로 사용되는 ‘듀얼 다이(dual die)’ 방식보다 제조와 설계가 간단하지만, 컴퓨팅 성능은 상대적으로 낮다. 실제로 B30A는 엔비디아의 주력 모델인 B300의 절반 수준의 연산능력을 가질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성능 제한은 미 정부의 수출 규제 선을 넘지 않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엔비디아는 B30A 외에도 ‘RTX6000D’라는 새로운 저사양 칩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5월 로이터가 처음 보도한 바 있으며, 기존 H20 칩보다 저렴하고 단순한 구조로 제작된다. RTX6000D는 제한된 메모리 대역폭을 갖추도록 설계돼, 미 정부가 설정한 수출 기준(초당 1.4 테라바이트)보다 소폭 낮은 수준에서 작동한다. 이 칩 역시 중국 고객을 위한 제품으로, 오는 9월부터 일부 샘플이 공급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엔비디아 측은 이번 신제품에 대해 "정부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제품을 개발 중"이라며, "모든 제품은 상업적 목적에 한정해 설계됐으며, 관련 기관의 승인을 받은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미국 정부의 규제를 철저히 준수하면서도 중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엔비디아가 규제를 감안한 특화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최근 강화된 미 정부의 기술 통제 정책이 있다. 지난해 미국은 중국에 대한 고성능 AI 칩 수출을 제한하면서, 정해진 메모리 속도나 연산 능력을 초과하는 제품의 수출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는 H100, A100 등 주력 제품의 중국 수출이 어려워졌다. 이번 신제품들은 이러한 정책 경계를 넘지 않으면서도, 중국 내 수요에 대응하려는 전략적 해법인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미국의 대중 기술 규제가 지속되는 한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기술 차단이 강화될수록 엔비디아는 중국 외 시장 확대와 기술 다변화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반도체 산업이 지정학적 리스크와 직결되는 만큼,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대응 전략도 복잡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