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반도체 선도 기업 엔비디아가 오랜 경쟁자였던 인텔에 5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하면서, 양사 간 협력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협력만으로 인텔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엔 역부족이라며, 근본적인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 경제 매체 월스트리트저널은 9월 18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인텔이 엔비디아와의 투자 및 칩 공동 개발 협약이라는 외형적 성과 외에도 회사 분할과 같은 구조적 조치에 나서야 실질적인 경쟁력이 회복될 수 있다고 짚었다. 특히 칩 설계와 제조를 동시에 수행하는 현재의 방식은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고, 외부 고객 확보에도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인텔은 반도체 업계에서는 드물게 칩 설계와 파운드리(위탁 생산)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이는 기술 내재화를 통해 효율성과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 2021년부터 파운드리 부문에 본격 투자했지만, 대만 TSMC나 한국 삼성전자에 비해 생산역량과 외부 고객 유치 측면에서 격차가 커지고 있으며, 여전히 막대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인텔이 칩 설계 부문과 제조 부문을 명확히 분리하게 된다면, 엔비디아뿐 아니라 퀄컴, AMD 등 다른 칩 설계 기업들이 TSMC나 삼성에 의존하지 않고도 인텔의 제조회사에 생산을 맡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전망했다. 이 경우 인텔은 잠재적 경쟁자로 간주되지 않아 더욱 폭넓은 고객군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는 이번 협력과 관련해 인텔의 파운드리 참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파운드리 성장에 얼마나 기여할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피했다. 이는 외부 고객들이 인텔 파운드리를 신뢰하기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는 점을 반영한다. 또한, 엔비디아의 투자가 단순히 협력 확대 차원이 아닌, 인텔이 AI 칩 분야에서 사실상 경쟁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함께 나왔다.
한편, 인텔 분할 주장은 단순한 경영 전략을 넘어 주주 및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린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인텔은 최근 미국 정부로부터 지분 약 10%를 지원받은 바 있으며, 미국 입장에선 국가 안보 차원에서 반도체 제조 역량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파운드리 부문의 독립성 강화를 지지할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인텔은 단기적으로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통해 일시적인 유동성을 확보하고, 기술 개발 측면에서 숨통을 틔웠지만, 장기적인 생존과 경쟁력 회복을 위해선 구조 개편이 필수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파운드리 독립을 통한 외부 수요 확보와 경쟁력 강화 없이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