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스타트업 세레브라스 시스템즈(Cerebras Systems)가 나스닥 상장 계획을 공식 철회했다. 최근 11억 달러(약 1조 5,800억 원)의 대규모 투자 유치 이후에도 여전히 상장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 IPO 문서 철회로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세레브라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IPO 등록 철회 요청서를 제출하며, 당분간 상장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전했다. 이 같은 결정의 구체적인 배경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9월 제출했던 상장 계획을 사실상 보류한 셈이다. SEC에 제출된 문서에 따르면, 회사 측은 “지금 시점에서 상장을 진행할 의사가 없다”고 명확히 밝혔다.
이번 IPO 철회는 세레브라스가 피델리티 매니지먼트가 주도한 투자 컨소시엄으로부터 11억 달러를 조달한 직후 발표됐다. 당시 앤드루 펠드먼 최고경영자(CEO)는 CNBC와 인터뷰에서 상장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불과 며칠 만에 철회를 선택한 데 대해 금융시장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잇따르고 있다. 세레브라스 측 대변인은 “가능한 한 빠른 시점에 상장을 재추진할 계획”이라며 여전히 IPO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기술 업계에서 IPO 철회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10년간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9년 위워크(WeWork)의 상장 철회와 2017년 앱다이내믹스(AppDynamics)가 시스코의 인수 제안을 받고 상장을 포기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세레브라스는 이러한 매각 배경 없이 독립적 기업 운영을 지속할 계획이기 때문에 이들과는 맥락이 다르다.
세레브라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 본사를 둔 인공지능 반도체 기업이다. 자사의 대표 제품인 WSE-3는 하나의 반도체 웨이퍼 전체 크기에 해당하는 칩으로, 5나노 공정 기반의 4조 트랜지스터와 90만 개 코어, 44GB의 온칩 메모리를 갖춘 초고성능 AI 칩이다. 기존 칩들이 외부 메모리와 상호작용하며 처리 속도에 병목이 생기는 반면, WSE-3는 AI 모델 전체를 칩 내부에서 실행할 수 있도록 설계돼 지연 문제를 최소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칩은 CS-3라는 복합 시스템으로 통합 및 제공되며, 냉각 장치와 추가 하드웨어, 그리고 관리형 클라우드 플랫폼과 함께 제공되어 인프라 유지 부담을 줄인다. 최근 공개된 IPO 문서에는 세레브라스가 2024년 상반기에 1억 3,640만 달러(약 1,964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전년 동기 대비 10배 이상 성장했고 손실 폭도 1,440만 달러(약 207억 원) 가량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투자 유치 이후 세레브라스는 미국 내 6개 지역에 새로운 데이터 센터를 세워 수천 대의 CS-3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AI 인프라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되며, 추가 자금은 차세대 칩 설계 및 패키징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는 데 투입될 예정이다.
IPO를 미루면서도 시장 주도권을 쥐겠다는 세레브라스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당분간 업계의 주요 관심사로 남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