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와 체결한 9조6천억 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해지하면서, 전기차 수요 정체 현상인 ‘캐즘(Chasm)’을 헤쳐나가기 위한 업계의 전략에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계약 해지는 2027년부터 6년간 진행될 장기 계약이었으며,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는 전례 없는 대형 수주 취소라는 점에서 상당한 파장이 일고 있다. 통상적인 전략 수정이나 일시적 사업 조정과 달리, 거의 10조 원에 달하는 계약이 무산된 것은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해당 계약을 기반으로 미국 내 생산라인 가동 계획도 수립해왔기 때문에, 당장 공장 운영 전략과 중장기 매출 계획 전반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업계는 바라보고 있다.

포드는 최근 또 다른 국내 배터리 업체인 SK온과도 합작법인을 해지하면서, 자사의 전동화 전략을 전면 재조정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업체 간 협력 변경을 넘어, 미국 내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대한 기대치를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실제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 축소가 진행 중이며, 소비자 수요 증가 속도도 둔화되면서 배터리 수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은 포드와 논의를 이어갈 가능성과 더불어, 다른 완성차 업체들과의 신규 공급 계약 체결도 검토할 전망이다. 또한 공장 단독 운영 전환을 통해 특정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같은 새로운 수요처 확보에 집중하려는 전략도 추진 중이다. 이는 단기적인 수익성 방어와 더불어 중장기적으로 사업 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업계 전반적으로는 LG에너지솔루션뿐만 아니라 SK온, 삼성SDI 등도 비슷한 전략 전환에 나서고 있다. 이미 포드와 협력을 종료한 SK온은 미국 내 공장을 단독 운영 형태로 재편했으며, 삼성SDI는 포드보다는 스텔란티스나 GM 등 다른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에 집중하고 있다. 업계는 이 같은 조치들을 통해 전기차 시장에 대한 지나친 낙관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한 공급망과 수요 기반을 마련하려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의 전략 변화가 가속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중심의 단일 수요 구조에서 벗어나 데이터센터용 ESS, 중장기적으로는 항공 모빌리티 등 새로운 응용 시장에 대한 관심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수요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전체 전동화 흐름 속에서 장기 판을 보는 전략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