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혁신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인공지능(AI)에 대해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2025년 중반에 접어들며 ‘화려한 시연’이 아닌, 실제 수익률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미국 내 300개 기업 CFO를 대상으로 한 KPMG 설문에 따르면, 생성형 AI에 대한 투자 수익률(ROI) 증명이 올 1분기에만 무려 90%의 응답자에게 중요한 요소로 꼽히며, 실질적 성과 압박이 급증하고 있다.
이 같은 요구 속에서 CFO들은 기존의 비용 절감 중심 평가를 넘어, 조직 전반의 효율성과 전략적 가치 창출까지 반영한 정교한 AI 투자 평가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베인캐피털벤처스 조사에선 응답 CFO의 79%가 올해 AI 예산을 확대할 계획이며, 94%는 최소 한 가지 재무 기능에서 생성형 AI로 의미 있는 효익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팬애틱스 베팅앤게이밍의 CFO인 안드레아 엘리스는 “과거 월말 정산 시 20시간이 소요되던 공급업체 데이터 확인 작업이 생성형 AI로 2시간 이내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머큐리 파이낸셜의 CFO 제이슨 화이팅도 “AI가 사람을 대체한 건 아니지만, 분석 속도는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며 생산성 중심의 성과를 강조했다.
하지만 단순한 시간 단축만으로 CFO들을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들은 이제 AI가 기존 기술로 해결하지 못했던 ‘설명가능성’이나 ‘예측 정확도’ 같은 복잡한 과제를 해결하길 기대한다. 플라이와이어의 CFO 코스민 피티고이는 “AI는 데이터 기반의 미래 예측뿐 아니라, 그 예측이 나온 전제 조건 변화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 단계에서는 단위 업무 시간당 비용 절감이나 자동화율, 인력 재배치 같은 수치로 효과를 측정하던 기업들은, 이제는 AI의 궁극적 영향력을 포착할 수 있는 신규 지표를 개발 중이다. 예컨대 ‘시장 도입 속도(Time To Value)’, ‘데이터 품질 지수’, ‘부서별 AI 도입률’ 등은 점차 전통 재무지표를 대체하고 있다. 생성형 AI 결과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비용이나, 데이터 품질 확보를 위한 초기 투자까지 ROI 계산에 반영되는 추세다.
이와 함께, AI 기술 특유의 학습과 정교화 과정을 반영한 감가상각 모델도 등장하고 있다. 기존의 선형 감가상각이 아닌, 성능 발달에 따라 가치가 상승하는 알고리즘 투자 특성에 맞춰 분기별 반영 비율을 조정하는 회계 모델이 개발되고 있다. 한 오락기업은 내부 알림 시스템에 AI를 적용한 후, 초기엔 업무 속도 향상을 통한 수익 개선 효과를 추구했지만, 장기적으로 정확도 향상과 범용성 증가가 더 큰 가치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감안해 지속 가치를 반영한 감가상각 모델로 전환했다.
CFO들은 이제 단순 비용 절감을 넘어, AI가 어떻게 매출 확대, 위험 저감, 전략적 유연성 확보에 기여하는지를 입증하려 한다. 리스크 예측, 자본배분 최적화, 사기 감지 시스템 등 AI의 적용 영역이 금융 리스크 완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곧 기업의 시장 평가액에 반영될 수 있다. 특히 ‘전략적 옵션 창출 여부’를 핵심 성과지표로 설정한 CFO들은, AI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비즈니스 모델을 가능케 하는지 여부를 정량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를 강화하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CFO들은 AI 성과지표 대시보드를 구축해 CEO와 이사회, 투자자에게 AI 기여도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있다. 단순 운영 지표를 넘어서, 매출 영향력, 고객 경험 개선, 직원 생산성, 전략적 차별화 등의 지표와 연결된 AI 성과지표는 기업 중심 전략 수립에 실질적 가이드를 제공한다.
리스크 측정 방식도 고도화되고 있다. 데이터 프라이버시, 인공지능의 설명력 부족, 기술 도입 실패 등 AI 특유의 리스크를 명시적으로 수치화하여 투자 수익률 분석에 포함시키는 ‘위험 조정 수익률(Risk-adjusted Return)’ 모델이 CFO 사이에서 도입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규제 불확실성에 따른 비용까지 예비비 형태로 반영하고 있으며,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를 위한 검증 절차와 감시 체계 구축 비용도 사전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CFO들은 이제 AI를 단기간 프로젝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가치 창출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 이들은 기술 조직, 현업 부서와 밀접하게 협업하며 범용성과 확장성을 갖춘 성숙도 높은 AI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AI 지표를 전사 전략, 예산, KPI 설계에 통합하며 ‘전사 핵심 역량’으로 자리매김시키고 있다.
AI 투자에 대한 시장 신뢰도와 내부 수용력을 높이기 위해, 선진 기업들은 ‘파일럿에서 확산까지’ 단계별 검증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이 프레임워크에서는 각각의 단계에 맞는 ROI 목표와 리스크 허용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있으며, AI 재무 평가를 위한 기업 내 관리 체계와 보고 구조까지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이처럼 철저하게 재정비된 CFO들의 AI 투자평가 체계는 기술의 실험 단계를 넘어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전환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미래 AI 도입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