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인공지능(AI) 활용 음악의 신탁 등록 기준을 시행 22일 만에 철회했다. 사람이 창작에 얼마나 관여해야 저작물로 볼 수 있는지를 둘러싼 국내 기준은 다시 공론화 단계로 돌아갔다.
음저협은 25일 제8차 이사회에서 ‘음악저작물 신고·등록에 관한 규정’과 ‘음악저작권 신탁계약약관’의 AI 관련 개정안을 철회하기로 의결했다. 새 기준은 지난 3일 시행됐다. 인간 창작자가 작사·작곡·편곡 과정에 실질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한 경우, 인간이 창작한 부분에 한해 신탁 등록을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핵심은 ‘AI 보조’와 ‘AI 생성’을 가르는 일이었다. 음저협은 창작자가 AI를 사용한 영역, 도구, 활용 방식, 사람이 직접 수행한 창작 내용을 신고하도록 했다. 필요하면 협회가 창작 과정을 기술적으로 확인하거나 내부 심의를 할 수 있는 근거도 뒀다.
반대로 프롬프트 입력만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딸깍 음원’은 등록 대상에서 제외했다. 허위·부정 신고에 대해서는 저작권 사용료 징수와 분배를 유보하거나 신탁계약을 해지하고, 사용료 반환과 위약벌을 적용하는 방안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철회 배경에는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은 AI 음악의 저작권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와 입법적 결론이 없는 상태에서 특정 단체가 먼저 기준을 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문체부도 18일 공식 공문을 통해 문화예술계 전반의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미 등록 절차에 들어간 저작물도 영향을 받는다. 개정 기준 시행 기간에 신탁 등록이 완료된 AI 활용 저작물은 등록 취소 요청 절차를 밟는다. 접수는 마쳤지만 등록이 끝나지 않은 저작물은 새 정책이 마련될 때까지 등록 절차가 유보된다.
이시하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은 “범문화계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국가적 기준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의견에 음저협 이사회도 뜻을 같이했다”며 “국회와 정부가 참여하는 폭넓은 논의를 통해 법·제도적 기준이 조속히 마련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민간 신탁단체의 실무 기준보다 공적 논의가 먼저 필요하다는 판단을 수용한 발언이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본다. AI 자체를 저작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비교적 분명하다. 다만 AI 도구를 쓴 결과물 안에서 사람이 만든 부분을 어디까지 창작으로 볼지는 별도 판단이 필요하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공개한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도 AI 산출물과 저작권 등록 가능 여부, 등록 시 유의사항을 별도 항목으로 다뤘다. 안내서는 AI 프로그램과 프롬프트, AI 산출물의 역할, 사람이 직접 창작한 부분을 구분해 살피도록 했다. 그러나 이를 음악 저작물 등록과 사용료 분배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여전히 제도화되지 않았다.
음악 산업에서는 이 기준이 곧 유통과 정산 문제로 이어진다. 저작물 등록 여부는 창작자 표시, 사용료 징수, 분배, 계약 검토와 맞물린다. 기준이 없으면 플랫폼과 제작사, 창작자는 곡 단위로 AI 활용 정도와 권리 귀속을 따져야 한다.
최지은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는 “AI 활용 저작물을 인간이 만든 저작물과 완전히 동일하게 취급하기는 어렵다”며 “현행 제도 안에서 관리하려면 업무상저작물처럼 권리 귀속이나 보호기간에 차등을 두는 방안 등을 참고해 AI 활용 정도에 따른 별도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I 활용 정도에 따라 권리 인정과 관리 방식을 나눠야 한다는 취지다.
해외 관리단체는 일부 기준을 이미 운영하고 있다. 미국작곡가·작사가·출판사협회(ASCAP), 브로드캐스트 뮤직(BMI), 캐나다작곡가·작사가·음악출판사협회(SOCAN)는 2025년 10월 인간 창작 요소와 AI 생성 요소가 결합한 음악의 등록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세 단체는 AI 도구만으로 전부 만들어진 음악은 등록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AI 음악과 권리 처리 문제는 콘텐츠 산업 밖으로 번지고 있다. 본지는 앞서 AI 활용 음악 등록 기준이 국내에서 처음 시행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기준은 창작 현장에서 AI가 보조 도구로 쓰이는 현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였다.
AI 음악의 권리 문제는 생성형 AI 기업과 콘텐츠 권리자의 계약 구조와도 맞물린다. 본지는 앞서 스태빌리티 AI가 음악·게임 기업을 새 투자자로 끌어들였다고 전했다. 창작 도구 안에 AI가 들어갈수록 모델 학습 데이터, 결과물 권리, 상업적 이용 조건을 함께 정리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업계의 쟁점은 기준의 방향보다 절차로 옮겨갔다. 협회가 먼저 실무 기준을 둘 것인지, 정부와 국회가 법·제도 기준을 먼저 세울 것인지가 남았다. 새 정책이 마련되기 전까지 AI 활용 음악의 신규 등록 절차는 유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