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서비스 산업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 실험적 수준에 머물렀던 분산원장기술(DLT)이 본격적인 대규모 채택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술 성숙, 활발한 혁신, 규제 명확화라는 세 가지 축이 동시에 정렬되면서 기관급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블록체인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브로아드리지(Broadridge)의 '2025 디지털 전환 및 차세대 기술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금융 서비스 기업의 71%가 블록체인과 분산원장 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4년(59%)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다. 전체 참여자의 48%는 자본시장 내 블록체인 기술이 향후 몇 년간 광범위하게 도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 배경에는 2025년을 기점으로 맞물린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첫째, 성공적인 도입 사례가 기술 신뢰도를 높였고, 둘째, 토큰화(tokenization)와 같은 혁신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했으며, 셋째, 미·EU를 중심으로 규제 불확실성이 축소되면서 기업의 관망세가 점차 해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브로아드리지의 'DLR(Distributed Ledger Repo)' 플랫폼을 꼽을 수 있다. 2021년 시범 출시 이후 이 플랫폼은 하루 평균 2,800억 달러(약 389조 2,000억 원) 이상의 레포(Repo) 거래를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그 거래 규모는 800% 이상 가파르게 상승했다. 전통 금융 기업들이 안정성과 실질적 효용을 체감하면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 셈이다.
토큰화는 최근 2년간 가장 두드러진 블록체인 혁신 축이다. 부동산, 회사채, 예술품 등 장외시장 내 자산들을 디지털 토큰으로 전환함으로써 유동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주목할 부문은 스테이블코인이다. 각국 주요 기업들은 달러 기반 자산을 담보로 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국경 간 자금 이동과 현금 운용에 활용하며, 기존 은행 인프라를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스테이블코인의 발전은 글로벌 송금 시장에서도 판을 뒤집고 있다. 연간 1조 달러(약 1,390조 원)에 이르는 해외 송금 시장에서, 기존에는 평균 6%가 넘는 수수료와 며칠씩 걸리는 정산 시간이 문제가 되었다. 스테이블코인은 수수료를 거의 1원 수준으로 낮추고, 실시간 전송을 가능케 함으로써 근본적인 효율성을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규제 환경에서도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 유럽연합은 MiCA 규제를 통해 암호자산 전반에 대한 포괄적 법체계를 마련했고, 미국 또한 2025년 GENIUS 법안을 통과시키며 스테이블코인 규제에 명확한 방향을 제시했다. 현재는 후속 입법 격인 CLARITY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친(親) 크립토 성향의 행정부가 출범한 미국의 정치 환경 변화도 시장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블록체인 기술의 확장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비록 브로아드리지 DLR의 폭발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전체 레포 시장 내 점유율은 여전히 미미하다. 이는 블록체인·DLT 기술이 얼마나 큰 미개척 공간과 성장을 앞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금융 서비스 산업은 지금, 기술 실증과 규제 명확화, 그리고 혁신적 확장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블록체인 대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향후 수년간 이 기술 기반의 금융 인프라가 어떤 속도로 기존 체계를 대체해 나갈지가 전 세계 금융 시장의 구조적 재편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