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핵심 철학을 흔들 수 있는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서클(Circle)이 되돌릴 수 있는 거래 기능을 테스트 중이라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업계 전반이 술렁이고 있다. 이 기능이 상용화된다면 블록체인의 '불변성'이라는 근간에 위협이 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즈(FT)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서클은 사용자가 원할 경우 암호화폐 거래를 되돌릴 수 있는 환불 메커니즘을 개발 중이다. 기존에는 한번 체결되면 되돌릴 수 없는 구조가 블록체인의 정체성이자 장점으로 여겨졌지만, 주류 금융에 적응하려는 일부 기업들은 규제 친화성과 사용자 보호 측면에서 되돌릴 수 있는 거래의 촉진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서클의 사장 히스 타버트(Heath Tarbert)는 "기존 금융 시스템에는 암호화폐가 아직 흡수하지 못한 장점이 많다"며 "거래 취소를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는 블록체인이 대중 금융에 한발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타버트는 과거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을 지낸 인물로, 기존 금융의 규범과 논리를 적극 도입하려는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같은 시도에 대해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일부 벤처투자자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기능에 대해 "공격적(offensive)"이라고 표현하며, 중앙집중형 시스템에 가까운 규칙 조작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올 8월 서클이 론칭한 자체 블록체인 '아크(Ark)' 프로젝트 또한 지나친 중앙화로 인해 블록체인이라 부르기 민망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에 실험 중인 기능은 거래 당사자 외에 추가적인 법률 전문가가 개입해야만 거래를 되돌릴 수 있는 방식인 것으로 전해졌다. 블록체인의 정합성 유지를 전제로 한 제한적 방식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실제 구현 시 발생할 수 있는 거버넌스 리스크와 검열 논란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편 서클은 거래 되돌리기 기능 외에도 거래 금액을 숨기는 프라이버시 기능 역시 개발 중이다. 고객이 전송하는 자산의 일부를 숨길 수 있도록 해 거래의 익명성을 높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다만 해당 거래는 블록체인 상에서 전체 구조는 여전히 확인 가능하도록 설계됐다고 강조했다.
최근 스테이블코인 업계는 트래블룰, 프라이버시 보호, 거래 투명성 등을 둘러싼 규제 및 기술 개발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중이다. 이번 서클의 실험은 암호화폐 본질과 실용성 사이의 균형이라는 오래된 논의를 다시 이슈의 전면으로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