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팔이 미국 내 자체 은행 설립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 금융업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이번 결정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대출 사업을 확대하고, 외부 금융기관 의존도를 줄이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페이팔은 12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유타주 금융기관국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산업대부회사(Industrial Loan Company, ILC)’ 형태로 은행 설립 신청서를 제출했다. 은행명은 ‘페이팔 은행(PayPal Bank)’으로 정해졌으며, 설립이 승인될 경우 은행 면허를 직접 갖게 돼 독립적으로 예금 수취 및 대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핀테크 기업이 은행업에 진입하기 위해 가장 자주 활용하는 ILC 방식은, 일반 상업회사라도 금융사 자회사를 두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창구로 주목받고 있다.
사실 페이팔은 2013년부터 이미 전 세계 42만 개 이상의 기업에 약 300억 달러(약 44조 원)의 대출을 제공해왔다. 다만 지금까지는 대출 재원을 제휴 은행을 통해 조달해야 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비용과 속도 측면의 제약이 따랐다. 이번 은행 설립이 성사되면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중소기업 전용 금융 생태계를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알렉스 크리스 최고경영자(CEO)는 “자본 조달이 중소기업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은행 설립을 통해 전 미국 지역의 중소업체에 금융 접근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페이팔 은행은 단순히 대출 업무에만 그치지 않고, 일반 개인 고객을 위한 이자 지급 저축 계좌도 제공할 예정이다. 초대 행장으로는 과거 토요타 파이낸셜 저축은행의 CEO를 지낸 마라 맥닐이 내정됐다. 이는 기업 금융뿐 아니라 리테일 금융까지 포괄하면서 전통 은행과의 경쟁 의지를 명확히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핀테크 기업의 은행업 진출은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테크 기반 금융기업의 은행업 진입에 대해 개방적인 입장을 보여왔고, 실제로 미국 통화감독청(OCC)은 가상화폐 관련 기업인 서클, 리플, 팍소스 등에 예비 은행 인가를 내준 바 있다. 최근에는 닛산과 소니 같은 비금융 대기업들도 은행 설립 신청에 나섰다.
페이팔은 이미 룩셈부르크에서는 공인을 받고 은행 사업을 운영 중이며, 이번 미국 내 진출은 글로벌 금융 플랫폼 구축을 위한 또 하나의 포석인 셈이다. 시장은 아직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페이팔 주가는 15일 정규장에서 1.49% 하락한 60.74달러로 마감했지만, 은행 설립 신청 소식이 전해진 뒤 시간 외 거래에서는 61.5달러로 상승세를 보였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디지털 금융 기업의 전통 금융업 진출을 더욱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미국처럼 금융 규제가 점진적으로 완화되는 시장에서는, 페이팔을 시작으로 다양한 핀테크 기업이 새로운 방식의 ‘무점포 은행’ 모델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