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개발을 대신하는 시대가 되면서 창업의 공식도 달라지고 있다. 자본보다 실행력, 모델보다 스킬과 평가 기준이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4일 토큰포스트가 공동 주관한 국내 대표 AI 컨퍼런스 '메타콘 2026'에서 류기백 팔레트 스튜디오스 창업자는 에반 VRL 대표와 함께 AI 시대 창업과 조직 변화, 한국 AI 산업의 기회를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채용 SaaS 기업 '파운틴(Fountain)'을 창업해 Y 컴비네이터, 소프트뱅크 등에서 약 3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던 경험과 함께 AI 시대 달라진 창업 방식을 소개했다.
VC 없이도 창업 가능한 시대
류 대표는 과거와 달리 AI가 개발 비용을 크게 낮추면서 반드시 벤처캐피털(VC) 투자를 받을 필요가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는 시드 투자, 시리즈A는 창업 공식이었다"며 "시공간적인, 그리고 의사결정 에 대한 자유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창업했지만 투자를 받는 순간 IPO나 M&A 같은 엑시트를 향한 책임이 생기고 VC를 만족시키기 위한 사업을 하게 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꼭 VC가 아니더라도 회사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다"며 "지금은 월 200달러 정도의 AI 직원이 많은 일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적은 자본으로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거대언어모델 자체보다 애플리케이션 생태계에 기회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은 데이터와 자본, GPU 인프라가 있고 중국 역시 거대한 내수시장과 플랫폼을 갖고 있다"며 "한국은 모델을 만드는 데 구조적으로 유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인프라적인 데이터 모델 말고 그 위에서 놀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열렸다"면서 한국은 오히려 애플리케이션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봤다.
류 대표는 "과거에는 미국과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달랐기 때문에 세계적인 소프트웨어가 나오기 어려웠지만 현재는 업무 환경과 UI·UX도 글로벌 시장과 점점 비슷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한국에서 만든 서비스가 해외로 역수출될 가능성도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고 전망했다.
AI 시대 경쟁력, '취향'을 학습시키는 일
류 대표는 모델을 직접 만들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평가 기준과 취향을 AI에 학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좋은 스킬을 만드는 방법론과 AI가 결과물을 얼마나 사람의 취향에 맞게 평가하는지가 앞으로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킬(Skill)은 전문가의 지식을 전달하는 하나의 가이드이자 문서로, 우리 회사에서는 어떤 방식을 선호하고 어떤 순서로 작업하는지 등을 적어놓은 텍스트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스킬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라고 소개했다. 첫 번째는 작업 과정에서 '이건 이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칙을 하나씩 추가하며 벽돌을 쌓듯 만드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실제 다양한 환경과 사용 사례에서도 잘 작동하는지 충분히 검증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두 번째는 먼저 좋은 결과물의 기준인 '평가 기준(Evaluation Set)'을 정의하는 방식이다. 류 대표는 "좋은 결과물은 어떤 특성을 가져야 하고 어떤 조건을 통과해야 하는지를 먼저 정해놓으면 AI가 그 기준을 만족하도록 스스로 반복하며 개선할 수 있다"며 "오히려 그런 평가 기준을 만드는 것이 AI를 제대로 활용하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평가 기준 구축을 위해 팔레트 스튜디오에서는 전문가들의 판단 과정을 그대로 데이터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류 대표는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채용할 때 디자이너들에게 '왜 좋고 왜 안 좋은지'를 보면서 그대로 말하게 하고 그 음성을 전부 기록한다"며 "여기서 색감, 타이포그래피, 브랜드 감도 같은 중요한 평가 기준을 추출한 뒤 객관식 평가 기준(Evaluation Set)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AI 산업도 정답이 있는 '데이터 레이블링'에서 정답이 없는 평가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자율주행 AI는 '사람', '자동차', '고양이'처럼 정답을 표시하는 데이터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어떤 글이 더 좋은가', '전문가라면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처럼 사람의 판단을 학습시키는 데이터가 더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류 대표는 최근 이러한 평가 분야 기업들이 급성장하고 있다며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사람의 취향과 감각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UI·UX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이제는 AI가 상당 부분 대신할 수 있다"며 "반대로 평균적인 결과물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그래픽 디자인, 브랜드 디자인, 마케팅 디자인 같은 영역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은 K-팝, 뷰티, 영상, 인테리어처럼 감각이 중요한 산업에서 경쟁력이 있는 만큼 "한국만의 워크플로와 평가 기준을 만드는 기회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1인 기업 시대…"일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조직 변화와 관련해서는 사람을 통해 이뤄지던 일들이 이제는 AI와 공유하는 데이터와 취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류 대표는 "이미 직원 한 명 없이 수백억, 수천억 원 규모 회사를 만든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제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개발자와 디자이너, 영업조직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AI가 리드 발굴, 이메일 작성, 개발까지 상당 부분 수행하면서 "생각이 나면 바로 만들고 테스트할 수 있는 시대"라고 진단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너무 쉬워진 만큼 클로드를 써는데서 끝나지 말고 직접 제품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판매까지 해보라"고 조언했다. 이어 "교육도 많고 도구도 충분한 만큼 이제는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경험 자체가 가장 중요한 학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타콘 2026은 토큰포스트가 공동 주관한 국내 대표 AI 컨퍼런스로, 7월 3~4일 서울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됐다. "AI Makers Rise"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는 AI 기술과 엔터프라이즈 혁신, 마케팅, 투자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AI 시대의 전략과 실행 경험을 공유하고, AI가 산업과 일의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