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BTC)의 핵심 투자 내러티브로 여겨지던 ‘반감기 이후 가격 급등’ 공식에 제동을 거는 분석 보고서가 나왔다. 전략가이자 데이터 연구자인 샤나카 앤슬렘 페레라는 비트코인의 과거 네 차례 반감기 랠리가 ‘공급 감소’가 아닌 ‘글로벌 유동성 확대’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했다.

페레라는 최근 공개한 리포트를 통해 “반감기는 코드상 예측 가능하고 수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이벤트지만, 이로 인해 가격이 오른다는 인과 관계는 통계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반감기와 가격 상승 사이에 놓인 유동성 환경을 주목했다. 예를 들어 2013년 키프로스 은행 위기, 2016년 양적완화 여진,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전례 없는 통화 공급 확대 등이 모두 반감기와 시점을 같이 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2024년 4월 진행된 최신 반감기 이전부터 비트코인 가격은 급등세를 보였으며, 이는 통상적인 반감기 랠리 해석과 다른 흐름이다. 페레라는 이런 현상을 ‘ETF 자금 유입’이라는 더 유력한 원인으로 꼽았다. 미국에서 승인된 현물 비트코인 ETF 상품 덕분에 기관 자금이 대거 유입됐고, 이는 비트코인을 공급 제약이 있는 디지털 자산보다는 ‘고베타(high-beta) 매크로 자산’처럼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힘을 실어주는 또 다른 연구도 있다. 분석가 린 알든이 2024년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비트코인 가격과 글로벌 M2(광의통화) 사이의 상관계수가 0.94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상당한 상관성을 시사하지만, 페레라는 이러한 통계적 연관성이 인과적 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두 변수에 대한 정교한 계량경제학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장 유동성에 따른 변동성은 최근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8월 일본의 엔화 캐리트레이드 급격한 청산과 이에 따른 금리 급등은 위험 자산 전반에 타격을 입혔고, 비트코인도 큰 하락을 겪었다.

또 다른 시사점은 반감기에 따른 가격 상승 폭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코인게코(CoinGecko)에 따르면, 2017년 사이클에서는 약 ‘29배’ 수익률이 발생했지만, 2025년 사이클에서는 수익률이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장에 대한 기관 투자는 이어지고 있다. 시장 최대 비트코인 보유기업인 스트레티지(Strategy)는 이번 주에도 10,624 BTC를 추가 매수하며 총 보유량을 66만 BTC 이상으로 확대했다.

앞으로 시장 유동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적 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은 최근 ETF 및 기관 투자 관련 암호화폐 규제를 개편 중이며, 이는 최대 규모의 가계 자산을 비트코인 시장으로 유입시킬 새 통로가 될 수 있다.

페레라는 이러한 모든 흐름을 종합해 “반감기는 여전히 비트코인의 희소성을 규정하지만, 시장 가격은 궁극적으로 글로벌 유동성 조건에 따라 움직인다”며 투자자들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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