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와 샌디스크(Sandisk)가 인공지능(AI) 추론 인프라의 메모리 병목을 겨냥해 최대 512GB 용량의 고대역폭 플래시(HBF·High Bandwidth Flash) 첫 표준 규격을 공개했다.
SK하이닉스는 4일 샌디스크와 함께 차세대 스토리지 기술인 HBF 첫 표준 규격을 오픈 컴퓨트 프로젝트(OCP·Open Compute Project)를 통해 공개했다고 밝혔다. 발표는 한국시간 5일부터 7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퓨처 오브 메모리 앤드 스토리지 2026(FMS·Future of Memory and Storage 2026) 개막에 맞춰 이뤄졌다.
HBF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이에 놓이는 낸드 기반 메모리 계층이다. HBM처럼 연산장치 가까이에서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는 구조를 지향하면서 낸드의 용량 확장성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AI 추론에서는 모델, 검색증강생성(RAG) 데이터, 사용자 데이터, 키-값(KV) 캐시 같은 정보가 반복적으로 읽힌다. 모든 데이터를 HBM에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연산장치 가까이에 더 큰 용량의 중간 메모리 계층을 두려는 수요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첫 규격은 낸드 다이를 8단과 16단으로 쌓는 두 구성을 기준으로 최대 512GB 용량을 정의했다. 대역폭은 1~3등급으로 나눠 약 0.4TB/s에서 3.0TB/s까지 지원하도록 했다.
HBF와 프로세서를 잇는 연결 방식에는 UCIe(Universal Chiplet Interconnect Express)를 채택했다. UCIe는 서로 다른 반도체 칩렛을 고속으로 연결하기 위한 개방형 인터페이스 규격이다.
이번 표준에는 연결 인터페이스와 전기적 특성, HBF 다이 스택 공정의 신뢰성·패키징 지침, 데이터 입출력을 위한 소프트웨어 사용 지침이 포함됐다. 샌디스크는 3일 발표에서 이 규격이 AI 추론 시스템과 가속기를 설계하는 기업에 HBF 적용을 위한 공통 기술 틀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표준화 작업에는 구글(Google)과 텐스토렌트(Tenstorrent)도 컨소시엄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SK하이닉스와 샌디스크는 지난 2월 OCP 아래 HBF 표준화 워크스트림을 시작했고, 약 6개월 만에 첫 기술 규격을 내놨다.
OCP는 데이터센터 하드웨어와 인프라 표준을 논의하는 개방형 협의체다. HBF 규격이 OCP를 통해 공개됐다는 것은 특정 기업의 독자 기술을 넘어 서버, 가속기, 메모리 생태계 안에서 공통 규격으로 검토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이번 후속 기사에서는 FMS 2026에서 제시된 HBF의 적용 범위와 HBM 비교 쟁점을 중심으로 다룬다. 앞선 보도에서 다룬 핵심 공개 사실은 최대 512GB 용량, 약 0.4~3.0TB/s 대역폭, UCIe 기반 연결 방식이었다.
FMS 2026에서는 HBF가 HBM을 곧바로 대체하는 기술이라기보다 AI 추론용 메모리 구조를 보완하는 기술로 제시됐다. 샌디스크는 HBF가 더 큰 근접 메모리 용량과 높은 대역폭이 필요한 영역에서 HBM과 함께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내 메모리 업체가 강점을 가진 HBM 시장과도 맞닿아 있다. HBM은 AI 가속기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고, HBF는 낸드 기반 기술을 활용해 추론용 데이터 처리 구조를 넓히는 보완 축으로 논의되고 있다.
앞서 본지는 샌디스크의 HBF 시연이 HBM 비교 조건을 둘러싼 논란을 낳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HBF의 기술적 의미와 별개로, 실제 AI 데이터센터에서 어떤 기준으로 HBM과 HBF를 비교할지는 향후 채택 논의의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공식 발표에서 10세대(V10) 375단 4D 낸드 웨이퍼와 제품을 공개하고, 전력 대비 성능이 이전 세대보다 2.5배 높아졌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를 기반으로 한 고성능·고용량 eSSD 양산을 내년 초 착수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천성(Kim Chun-sung) SK하이닉스 솔루션 개발 담당 부문장은 “AI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데이터 처리 구조 전반의 재설계가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HBF를 통해 메모리와 스토리지 간 경계를 확장하고, 시스템 전반의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아키텍처 구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발표는 상용 제품 채택이 아니라 공개 표준 규격과 생태계 조성 단계의 성격이 크다. HBF가 HBM과 SSD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가속기 업체와 데이터센터 사업자의 설계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