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으로 국제 유가와 원재료 가격이 뛰면서 4월 국내 생산자물가가 외환위기 이후 약 28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기업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단계에서 부담하는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다는 뜻이어서, 앞으로 소비자물가에도 적지 않은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4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8.43(2020년=100)으로 전월 125.35보다 2.5% 상승했다. 월간 상승률 기준으로 1998년 2월 이후 가장 높다. 생산자물가는 지난해 9월부터 8개월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생산자물가는 공장과 농가, 서비스업체 등이 출하 단계에서 받는 가격의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로, 통상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준다.
이번 상승을 이끈 핵심은 공산품, 그중에서도 석유 관련 품목이다. 석유 및 석탄 제품은 전월보다 31.9% 올라 전달의 32.0%와 비슷한 높은 상승률을 유지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73.9% 올라 2022년 6월 이후 3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세부적으로는 솔벤트가 전월 대비 94.8%, 경유가 20.7% 올랐다. 한국은행은 3월에 휘발유·경유·나프타 가격이 크게 오른 데 이어 4월에는 나프타 상승 폭은 다소 줄었지만 휘발유·경유·등유의 오름세가 이어졌고, 제트유 가격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농림수산품은 농산물과 수산물 가격이 내려 전월보다 1.0% 하락했고, 전력·가스·수도 및 폐기물은 산업용 도시가스 등을 중심으로 0.3% 올랐다.
서비스 가격도 오름세를 보였다. 4월 서비스 물가는 전월보다 0.8% 상승했다. 특히 금융 및 보험 부문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6.2% 올라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최근 증시 호조로 주식 거래가 늘면서 위탁매매 수수료가 1년 전보다 119.0% 급등한 영향이 컸다. 단순히 원자재만이 아니라 금융시장 활황도 생산 단계의 가격 지표를 끌어올린 셈이다.
수입품까지 포함해 국내에 공급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보여주는 국내 공급물가지수는 전월보다 5.2% 상승했다. 이 가운데 원재료는 28.5% 올라 1980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중간재는 4.3%, 최종재는 0.5% 각각 올랐고, 용도별로는 자본재·소비재·서비스가 모두 0.5%씩 상승했다. 국내 출하분에 수출품까지 더해 산출한 총산출물가지수도 3.9% 올랐다. 이는 비용 상승이 일부 업종에 그치지 않고 생산 전반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은 중동 전쟁이 이어지면서 원자재 공급 차질과 가격 상승이 시차를 두고 여러 부문에 퍼지고, 그 결과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를 함께 밀어 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실제 소비자 가격으로 얼마나 전가될지는 시장 수요, 기업의 경영 여건, 정부 정책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불확실성은 여전히 크다. 5월의 경우 두바이유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5월 19일 기준 평균으로 전월보다 다소 낮아졌지만, 산업용 도시가스와 국내 항공 여객 요금 상승 요인이 남아 있다. 이 같은 흐름은 국제 유가와 환율이 다시 불안해질 경우 물가 전반의 상방 압력이 더 길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