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 투자자 라울 팔(Raoul Pal)이 기존 경기침체 모델이 더는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며, 인공지능(AI)이 다음 경제 국면의 핵심 동력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산업 경기 둔화와 AI 기반 성장세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시장이 완전히 다른 두 세계로 갈라지고 있다고 봤다.
팔은 전통적인 ISM 같은 제조업 지표만으로 경기 흐름을 읽으려는 시도가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한쪽에서는 산업 생산이 완만하게 둔화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AI와 ‘지능 경제’가 역사적으로 보기 힘든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침체 경고가 실제로는 빗나간 배경에도 이 같은 구조적 분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앤트로픽 성장, 시장 인식까지 흔들어
팔이 가장 강하게 언급한 사례는 앤트로픽(Anthropic)이다. 그는 이 회사의 매출 성장세를 ‘역사상 가장 빠른 확장’이라고 표현하며,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던 매출이 약 3년 만에 1000억달러 수준까지 불어났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근 1년 사이 100억달러에서 1000억달러로 뛴 흐름에 주목했다.
그는 이런 폭발적 성장이 주식 밸류에이션과 이익 전망, 더 나아가 경기순환 자체에 대한 해석을 바꾸고 있다고 봤다. 통상적으로는 기업 이익이 GDP보다 느리게 움직이지만, AI 기업들은 이익 성장 곡선이 거의 수직에 가까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환율 약세와 자산 가격 상승도 맞물려
팔은 화폐 가치 하락, 즉 ‘통화가치 희석’도 자산 가격 상승을 떠받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달러 약세와 유동성 환경 속에서는 주식 같은 위험자산이 장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여기에 AI 기업들의 실적 개선 속도까지 더해지면서, 이번 사이클은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평가다.
원달러환율이 1달러당 1,504.20원 수준까지 오른 상황도 이런 해석과 무관하지 않다. 달러 강세와 인플레이션 우려, 그리고 AI 중심의 성장 기대가 겹치면서 투자자들은 단순한 경기침체 여부보다 ‘어떤 산업이 실제 성장을 주도하느냐’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결국 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금 시장은 전통적인 경기 모델보다 AI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성장 구조를 더 크게 반영하고 있으며, 이 흐름이 당분간 자산 가격과 경제 지표를 계속 흔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