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 단가가 크게 오르면서 올해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4년 만에 10%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가계부채비율과 국가채무비율 같은 거시 건전성 지표도 예상보다 빠르게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금융시장과 한국은행의 최근 전망을 종합하면, 다음 달 9일 발표될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를 크게 웃돌 가능성이 높다. 명목 국내총생산은 물가 변동까지 반영한 경제 규모를 뜻하는데, 실질 성장에 더해 수출 가격 상승이 겹치면 증가 폭이 더 커진다. 한국은행은 지난 28일 경제전망 설명회에서 반도체 수출 가격 강세와 실질 국내총소득 증가 등을 근거로 명목 성장률이 상당히 높게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 속보치는 전년 동기 대비 3.6%였고, 한국은행은 5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연간 실질 성장률 전망치도 2.0%에서 2.6%로 올렸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정부가 제시한 가계부채 관리 목표도 예상보다 빨리 가시권에 들어올 수 있다. 정부는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2030년까지 8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2021년 말 98.7%까지 치솟았던 이 비율은 지난해 말 88.6%로 내려왔는데,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정부 목표인 1.5%로 가정하면 명목 국내총생산이 12% 늘어날 경우 가계부채비율은 80.3%까지 하락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명목 성장률이 13%면 79.6%로 80% 아래로 내려가고, 10%만 늘어도 81.8%로 낮아져 11년 만의 최저 수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분모가 커지면 같은 빚 규모라도 비율은 낮아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국제 비교로 봐도 한국의 가계부채 부담은 여전히 높은 편이어서 이런 하락세의 의미는 적지 않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7.8%로, 성숙시장 37개국 가운데 7위였다. 스위스 124.0%, 호주 114.0%, 캐나다 99.8%, 네덜란드 92.7%, 뉴질랜드 90.9%, 덴마크 90.0%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 1분기부터 신흥국이 아니라 성숙시장 국가로 분류됐는데, 만약 올해 비율이 80%대 초반까지 내려가면 국제 순위도 10위 안팎으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는 가계부채 자체가 크게 줄었다기보다 명목 경제 규모가 빠르게 커진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구조적 개선 여부는 별도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명목 성장의 확장은 재정 측면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올해 국가채무가 1천415조2천억원으로 늘고,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1.6%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올해 명목 국내총생산이 10% 성장한다고 단순 가정하면 국가채무비율은 48.3% 수준으로 계산돼 상승 폭이 0.7%포인트에 그칠 수 있다. 여기에 반도체 수출 호조로 세수 증가까지 겹치면 재정 여력은 더 넓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은 5월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2천500억달러로 제시했는데, 이는 지난 2월 전망치 1천700억달러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한국은행은 반도체 호황이 법인세와 소득세 증가로 이어져 정부 재정에도 낙수효과를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반도체 경기의 강세가 얼마나 이어지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당분간은 한국 경제의 외형 성장과 재정·부채 지표 개선을 함께 밀어올리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