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를 대상으로 피칭을 준비하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지금은 기회와 경쟁이 공존하는 가장 복잡한 시점이다. 북미 지역 스타트업들이 지난해에만 1,840억 달러(약 265조 6,000억 원)의 자금을 유치하며 2023년 대비 21% 성장하는 등 벤처 자본 흐름은 다시 강세를 보였지만, 초기 단계 기업에 대한 투자 문턱은 훨씬 높아진 상황이다.
크런치베이스의 최근 리포트에 따르면, 시드 단계 스타트업이 시리즈A 단계로 넘어가는 비율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수렴 중이다. 이제 좋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는 자금을 유치하기 어려우며, 창업 경험이 풍부하거나 이미 안착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경우가 아니면 투자자의 관심조차 받기 힘들다.
이런 흐름 속에서 투자 유치에 성공하는 팀들은 대부분 핵심을 정확히 짚는 피칭 전략을 구사한다. 겉보기에 그럴듯한 형식을 취하기보단 창업자가 갖는 고유한 문제 인식과 솔루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달해야 한다. 과거 에어비앤비처럼 명확한 문제 정의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설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누구나 여분의 방을 빌려줄 수 있게 돕는다”는 일문으로 비전을 전한 에어비앤비의 초기 피치덱이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또한 창업자들은 '왜 지금인가'라는 질문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 시장이 왜 지금 열렸고, 앞으로 1~2년 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를 명확히 설명하면 강한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초기 트랙션, 즉 고객 반응이나 제품 사용 지표 등이 뒷받침된다면 그 효과는 배가된다. 산업에 따라 수치의 형태는 달라지지만, 투자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가 바로 이 성장 가능성을 입증하는 데이터다.
투자자의 유형마다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벤처캐피털은 일정 수준 이상 검증된 시장성과 매출 데이터를 요구하지만, 엑셀러레이터는 창업자의 문제 정의 능력과 기술적 역량, 그리고 고객과의 접점을 더 중시한다. 특히 엑셀러레이터는 창업자가 해당 문제를 직접 경험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강한 동기를 가진 경우에 더 큰 점수를 준다.
실제로 많은 실패하는 피치들은 일반 템플릿에 의존하거나 누구에나 통할 것 같은 메시지를 구성하려 하다가 정작 자신만의 이야기를 잃는다. 반면 뛰어난 피칭은 창업자의 신념과 비전이 선명히 드러나며, 듣는 이가 그 비전 속 미래를 함께 그리고 싶다고 느낄 때 비로소 '투자자'가 아닌 '동반자'를 얻게 된다.
결국 구체적 숫자와 현실적인 성장 전략은 기본이며, 그 위에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얹혀져야 투자자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게 된다.
혼잡한 시장에서 진정 주목받고 싶은가? 단순한 자금 유치가 아닌, '믿는 사람'을 얻는 피칭에 집중해야 할 때다. 이는 천편일률적인 슬라이드가 아닌, 창업자의 정체성과 시장에 대한 독창적인 시각 위에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