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바꾸는 돈의 판』을 바탕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어떻게 거래 편의 수단을 넘어 실제 통화 인프라로 기능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토큰포스트 북클럽 연재의 두 번째 글이다. [편집자주]
처음부터 돈이었던 것은 아니다.
USDT와 USDC가 등장했을 때, 스테이블코인은 어디까지나 암호화폐 시장 내부의 도구였다. 변동성이 큰 자산들 사이에서 가격 기준점을 제공하고, 거래소 간 이동을 빠르게 만드는 수단에 불과했다. 은행 송금이 느리고 불편했기 때문에 생겨난 우회로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우회로가 본선이 되기 시작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바꾸는 돈의 판』에서 저자 김동환 대니월드 대표가 주목하는 변화는 사용 목적의 이동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코인을 사기 위한 돈”이 아니라, 돈 자체로 쓰이기 시작했다. 송금, 결제, 정산이라는 화폐의 기본 기능을 하나씩 흡수하면서다.
이 전환의 배경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기존 금융 레일이 디지털 환경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 송금은 여전히 느리고 비싸다. 중간 은행을 거칠수록 비용은 늘고, 시간은 예측할 수 없어진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위에서 즉시 이동한다. 주말도 없고, 영업시간도 없다. 거래는 실시간으로 확정되고, 기록은 투명하게 남는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기술 애호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업과 기관이 먼저 반응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정산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해외 법인 간 자금 이동, 공급망 결제, 프리랜서 보수 지급 등 기존 금융 시스템으로는 번거롭던 영역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실용적인 대안이 됐다. 빠르고, 저렴하며,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선다. 금융 레일, 즉 돈이 흐르는 길이 된다.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은 여기 있다. 돈의 본질은 종이나 숫자가 아니라, 이동 가능성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돈을 더 자주, 더 멀리, 더 쉽게 이동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 결과, 기존 은행 시스템이 담당하던 일부 역할을 자연스럽게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통화의 위계를 바꾼다. 누가 발행했느냐보다, 어디서 더 잘 작동하느냐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스테이블코인은 특정 국가의 화폐라기보다, 글로벌 디지털 경제의 공용 자산처럼 쓰인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빠르게 확산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신뢰받는 통화 위에, 가장 효율적인 이동 수단을 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효율은 중립적이지 않다. 스테이블코인이 널리 쓰일수록, 해당 통화의 영향력도 함께 확장된다.
저자는 이 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통화 경쟁의 도구로 본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미국의 정책과 무관하게 달러 사용 범위를 넓히고 있고, 이는 각국 중앙은행에게 불편한 현실이다. 통화 주권은 발행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사용되지 않는 화폐는 영향력을 잃는다.
이제 스테이블코인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 금지하거나 무시하기에는 이미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
다음 연재에서는 이 질문을 한국으로 가져온다. 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가. 기술도, 수요도 있는데 무엇이 이를 가로막고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는 누가 치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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