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도 들었던 말이다. 2022년에도 되풀이됐다. 그리고 지금, 다시 등장했다. 시장은 얼어붙었고, 투자자는 지쳤으며, 프로젝트는 조용히 사라진다. 낙관은 조롱의 대상이 됐고, ‘웹3’라는 단어조차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소비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순간이야말로 산업의 체질이 바뀌는 시점이다. 죽은 것은 암호화폐 자체가 아니다. 지금까지 통용되던 방식, 즉 ‘투기 중심의 암호화폐’가 종말을 맞았을 뿐이다.
그 점에서 이번 하락장은 퇴보가 아니라 정화에 가깝다.
투기로 연명한 산업의 한계
지난 몇 차례의 상승장은 일정한 공식을 반복해왔다. 백서를 내고, 기대를 조성하고, 토큰을 발행해 자금을 모은 뒤, 시장의 열기 속에서 가치를 부풀렸다. 프로덕트-마켓 핏(제품이 실제 시장의 수요에 부합하는 상태)을 찾는 일은 그다음 문제였다. 때로는 끝내 찾지 못해도 무방했다. 다음 상승장이 모든 것을 덮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이클은 달랐다. 테스트넷 트랜잭션 수, 에어드롭 참여자 수, 총예치금(TVL) 같은 지표들이 얼마나 쉽게 부풀려질 수 있는지 드러났다. 숫자는 화려했으나, 현금 흐름은 비어 있었다. ‘사용자 증가’라는 발표는 이어졌지만, 정작 누가 왜 비용을 지불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빈약했다.
한국 시장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반복됐다. 2021~2022년 등장한 수많은 프로젝트가 화려한 파트너십과 생태계 확장을 약속했지만, 지금 실질적인 제품을 운영하며 매출을 창출하는 곳은 극히 일부다. 상장 자체가 성과였고, 가격 상승이 비전의 증명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가격은 수요가 아니다.
시장에는 더 이상 ‘이야기’만으로 버틸 체력이 남아 있지 않다.
조작할 수 없는 지표, 매출
이제 남은 기준은 단순하다. 매출이다.
사용자가 실제로 비용을 지불하는가. 그 지불이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되는가. 토큰 인센티브가 사라져도 서비스가 유지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상당수 프로젝트는 침묵한다.
그동안 많은 프로젝트가 프로덕트-마켓 핏을 갖지 못한 채 성장해왔다. 엄밀히 말해, 필요하지 않았다. 투기적 수요가 수익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기가 식으면 본질이 드러난다. 기술이 아니라 수요, 커뮤니티가 아니라 고객, 기대가 아니라 현금 흐름이 남는다.
디파이 영역에서 실거래 수수료로 수익을 내는 프로토콜이 재평가되고, 기업 고객을 확보한 인프라 기업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물자산 토큰화(RWA)가 부상하는 현상 역시 전통 금융의 현금 흐름을 블록체인 위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다. 말이 아니라 구조, 서사가 아니라 수익 모델이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리테일(개인) 암호화폐 투자 시장이다. 그만큼 패러다임 전환의 영향도 크다.
이제는 투자 기준을 바꿔야 한다. 백서의 문장보다 재무 구조를 들여다봐야 하고, ‘파트너십 체결’이라는 보도자료보다 온체인 수수료 수익을 확인해야 한다. 텔레그램 가입자 수보다 실제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봐야 한다.
핵심은 단 하나다. 토큰이 없어도 사람들이 돈을 내고 쓸 제품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다음 상승장은 그 프로젝트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산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암호화폐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쉽고 빠른 수익을 약속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과잉과 거품이 걷힌 자리에서 산업은 비로소 기업의 언어로 재편된다. 기술은 화려한 서사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도구로 평가받는다.
2018년 이후 살아남은 프로젝트들이 이후 몇 년간 산업의 중추가 되었듯, 이번 구조조정을 통과하는 기업들이 다음 시대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하락장은 파괴이자 선별이다. 그리고 선별은 산업을 단단하게 만든다.
공포가 깊을수록 기준은 엄격해진다. 엄격한 기준은 장기적으로 강세의 토대가 된다.
문제는 시장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의 판단 기준이 그 변화를 따라가고 있는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냉정이다. 냉정 위에 세워진 낙관만이 오래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