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AI 거품은 꺼진다…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철도·전력·인터넷 거품은 무너졌지만 인프라는 남았다…AI 시대의 진짜 승자는 붕괴 이후에 결정된다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AI에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투자금이 모두 수익으로 돌아올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기술의 성공이 반드시 투자자의 성공을 뜻하지는 않는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크리스 우드 전략가는 최근 AI 투자 열풍이 결국 막대한 자본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기업들이 수천억 달러를 들여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확보하고 있지만, 저렴한 중국산 오픈소스 AI가 확산하면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AI는 발전하겠지만, AI에 돈을 쏟아부은 기업들은 오히려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1870년대 미국에서는 철도 건설 열풍이 불었다. 철도만 놓으면 도시가 생기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에 투자금이 몰렸다. 수요도 없는 지역까지 철길이 뻗었다. 결국 1873년 대형 금융회사가 무너지면서 금융 공황이 발생했고, 수많은 철도회사가 파산했다. 하지만 철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남겨진 철도망은 이후 미국 산업화의 핵심 기반이 됐다.
1920년대 전력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전기가 미래라는 믿음에 막대한 자본이 몰렸고, 기업들은 빚을 내 발전소와 송전망을 확장했다. 대공황이 닥치자 거대 전력회사들이 무너졌다. 그러나 전력망은 남았다. 전기는 미국의 공장과 가정을 바꾸고 새로운 산업을 키웠다.
가장 가까운 사례는 2000년대 초 인터넷 거품 붕괴다. 통신회사들은 인터넷 사용량이 끝없이 늘어날 것이라며 막대한 돈을 들여 광케이블을 설치했다. 거품이 꺼지자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했고, 사용하지 않는 광케이블이 곳곳에 남았다. 그러나 이 설비들은 이후 헐값에 팔려나갔다. 저렴해진 통신망을 기반으로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넷플릭스와 클라우드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
세 사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투자자는 돈을 잃었지만, 그들이 건설한 인프라는 다음 시대의 자산이 됐다.
지금 AI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세계 주요 기술기업들은 더 좋은 AI를 만들기 위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설비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문제는 투자 규모만큼 돈을 벌 수 있느냐다. AI 성능은 빠르게 좋아지고 있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용 가격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AI 서비스 기업의 수익성이 나빠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빚이다. 과거 철도와 통신 산업의 거품도 투자 열기가 식었다는 이유만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은 돈을 빌려주던 금융회사들이 더 이상 자금을 공급하지 않았을 때였다. AI 산업에서도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돈보다 투자와 차입이 더 빠르게 늘어난다면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모든 AI 투자를 거품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상당한 현금을 보유한 대형 기술기업들과 빚에 의존하는 신생 기업의 사정은 다르다. AI 반도체는 철도나 송전망과 달리 기술 변화에 따라 빠르게 낡을 수도 있다. 과거의 역사가 그대로 반복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투자 규모와 실제 수익 사이의 격차는 반드시 살펴야 한다.
이는 한국에도 중요한 문제다. 국내 증시는 반도체와 AI 투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미국의 AI 설비투자가 둔화하면 한국 기업과 금융시장에도 충격이 불가피하다. 투자자들은 주가 상승만 볼 것이 아니라 기업의 현금흐름과 부채, 실제 수익성을 따져봐야 한다.
그렇다고 AI 투자 열풍이 꺼지는 것을 기술의 실패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데이터센터와 전력 설비, 연산 자원이 저렴해지면 지금은 막대한 비용 때문에 AI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도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비싼 기술을 독점하는 기업보다 이를 저렴하게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이 다음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도 있다.
암호화폐 산업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17년 ICO 열풍과 2022년 시장 붕괴 과정에서 수많은 프로젝트가 사라지고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봤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남겨진 기술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스테이블코인과 자산 토큰화가 제도권 금융으로 확장되고 있다. 물론 살아남은 기술이 과거의 모든 투자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거품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거품이 꺼진 뒤 무엇이 남고 누가 그것을 활용하느냐다.
AI 투자 열풍이 언제, 어떤 형태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역사는 한 가지 교훈을 준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면 자본은 낭비되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인프라가 다음 산업을 키우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에 대한 맹목적인 낙관도, 무조건적인 비관도 아니다. 투자 위험에는 냉정하되 기술의 가능성은 놓치지 않는 태도다. 거품이 꺼진 뒤에도 살아남을 가치를 찾아야 한다. 다음 시대의 승자는 AI 열풍에 가장 많은 돈을 쓴 기업이 아니라, 그 열풍이 남긴 자산을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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