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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AI만 오르는 시장, 경제 전체가 건강하다는 착각

주가·기업 이익·설비투자까지 한곳에 집중…AI의 성과를 산업 전반으로 넓혀야 한다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 부근인데, 정작 상당수 종목은 고점에서 크게 떨어져 있다. JP모건이 10월 8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S&P500 구성 종목의 약 60%가 각자의 역대 최고가보다 20% 이상 낮은 수준에 있다. 최근 3년간 지수보다 높은 수익률을 낸 종목도 약 30%에 그쳤다. 지수는 호황을 말하지만, 그 안에 있는 기업들의 사정은 크게 다르다. 소수의 초대형 기업이 끌어올린 숫자를 시장 전체의 건강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 중심에 인공지능(AI)이 있다. AI가 바꿀 미래에 대한 기대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 설비로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 관련 기업들의 이익도 늘고 있다. 그러나 성장의 대부분이 한 분야에 몰릴수록 경제는 그 분야의 투자 결정에 더 크게 흔들린다. 거대한 기술기업 몇 곳이 투자 속도를 늦추는 일이 주식시장과 실물경제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AI 열풍을 모두 거품이라고 치부하는 것도 성급하다. JP모건은 2024년 이후 주요 기술주의 상승이 단순히 비싼 가격을 더 비싸게 매기는 과정이라기보다 이익 증가에 힘입었다고 분석했다. 실적이 뒷받침된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이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투자까지 모두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 반도체를 팔아 벌어들인 이익과, 그 반도체를 산 기업이 내일 거둘 수익은 별개의 문제다.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은 AI를 만드는 기업의 실적을 넘어, AI를 사용하는 기업의 성과다. 일부 기업에서는 업무 시간을 줄이고 매출을 높이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산업 전반의 뚜렷한 이익 증가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이르다. JP모건도 AI로 절감한 비용을 다시 사업에 투입하는 기업들이 있다고 설명한다.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돈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생산성 혁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시설을 이용하는 기업들이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투자가 지속될 수 있다.

실물경제의 쏠림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JP모건 집계에서 미국의 데이터센터와 전력 관련 건설 지출은 2024년 1월 이후 38% 늘었다. 같은 기간 제조업 건설은 28%, 상업용 부동산은 13%, 주거용은 6% 줄었다. 한쪽의 대규모 투자가 다른 분야의 부진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계획 단계의 데이터센터 용량이 줄어드는 움직임도 관찰됐다. 이것만으로 투자 붐이 끝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성장의 지속성을 따져봐야 할 신호다.

돈의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데이터센터에는 반도체뿐 아니라 전력망과 냉각시설, 부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정부의 국채 발행에 대형 기술기업의 자금 조달까지 겹치면 자본을 확보하려는 경쟁은 치열해진다. JP모건은 최근 미국 장기금리 상승의 요인으로 끈질긴 물가 상승, 예상보다 강한 성장과 함께 대형 기술기업의 채권 발행을 지목했다. AI가 금리를 혼자 끌어올린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AI 투자 확대가 다른 산업의 자금 조달 여건에 부담을 줄 가능성은 살펴야 한다.

이런 구조가 이어진다면 자금력이 약한 기업부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대형 기술기업은 높은 조달 비용을 감당하며 투자를 이어가도, 중소기업과 전통 산업은 같은 조건을 견디기 어렵다. AI가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드는 동시에 다른 분야의 투자를 압박할 수 있는 것이다. 정책 당국은 AI 투자 규모를 자랑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혜택과 비용이 경제 안에서 어떻게 나뉘는지 살펴야 한다.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AI용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기회다. 그러나 반도체 기업의 실적 개선을 한국 경제 전체의 체질 개선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해외 기술기업의 투자 계획에 기대는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송전망, 합리적인 인허가 체계를 마련하고, 기업은 제조·물류·의료·금융 등 실제 현장에서 AI의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 지원의 기준도 투자 발표액보다 비용 절감, 품질 개선, 새로운 매출에 두는 것이 맞다.

암호화폐 시장 역시 AI 열풍을 막연한 호재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AI로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지거나 투자 자금이 특정 산업에 집중되면 다른 자산시장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기술의 미래가 밝다’는 전망이 모든 자산의 가격 상승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AI는 큰 기회다. 그 기회를 오래 이어가려면 소수 기업의 호황이 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으로 번져야 한다. 투자자는 지수의 높이보다 그 상승을 떠받치는 기업의 폭을 보고, 정부는 투자 총액보다 경제 전체에 남는 성과를 따져야 한다. AI의 성공을 한국 경제의 성공으로 연결하는 일은 반도체 주문이 늘었다고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기대가 아니라, 더 넓게 확인되는 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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