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가 5월 1일자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OPEC 플러스(OPEC+)를 떠나겠다고 밝히면서, 60년 넘게 국제 원유 시장의 공급 조절 축으로 작동해온 산유국 공조 체제에 뚜렷한 균열이 생겼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유가가 크게 흔들리는 시점에 나온 결정이어서, 단순한 회원국 이탈을 넘어 중동의 힘의 균형과 에너지 시장 질서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UAE는 28일 성명에서 이번 탈퇴가 자국의 장기적 전략과 경제 비전, 그리고 변화하는 에너지 시장 환경을 반영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겉으로는 미래지향적 에너지 전략을 내세웠지만, 시장에서는 그동안 누적된 불만이 결국 표면으로 드러났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OPEC과 OPEC+의 실질적 의사결정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주도해 왔고, 특히 사우디는 감산을 통해 높은 유가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재정 수입을 방어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반면 UAE는 생산 능력 확대에 꾸준히 투자해온 나라로, 석유를 더 많이 뽑아 더 빨리 현금화하고 이를 금융·관광·첨단산업 같은 비석유 부문에 재투자하려는 전략을 펴왔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 쿼터(회원국별 생산 한도)는 UAE 입장에서는 성장 제약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이다.
이번 결정에는 사우디와의 외교·안보 갈등도 배경으로 거론된다. 두 나라는 한때 예멘 내전에 함께 개입했지만, 이후 현지 대리 세력을 누구에게 실어주느냐를 두고 노선이 갈라졌다. 사우디가 예멘 정부군을 지원하는 동안 UAE는 남부 분리주의 세력을 뒷받침했고, 올해 1월에는 사우디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이 UAE 측 거점으로 여겨지던 아덴을 장악한 뒤 UAE가 예멘 잔류 병력을 완전히 철수하면서 양국 군사 공조는 사실상 끝난 것으로 평가됐다. 여기에 이번 이란 전쟁 국면에서도 UAE는 자국의 핵심 물류 거점인 푸자이라항과 제벨알리항이 이란의 드론·미사일 위협에 노출됐을 때 걸프협력회의(GCC)의 보다 강한 공동 대응을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정보 공유와 물류 지원 수준에 그쳤다는 점에 적잖은 실망을 느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 원유 시장이 주목하는 지점은 UAE의 탈퇴가 앞으로 실제 공급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카르텔의 감산 규율에서 벗어나면 UAE는 독자적으로 증산에 나설 여지가 커진다. 이는 전쟁으로 일시적인 공급 차질 우려가 남아 있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국제 유가를 끌어내리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핀란드 노르디아의 얀 폰 게리히 수석 분석가는 로이터 통신에 UAE가 더 많은 석유 생산을 원하고 있어 이번 조치는 유가에 하락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 ICIS의 아제이 파르마 이사도 UAE가 오랫동안 OPEC의 전반적 정책에 동의하지 않았던 만큼 놀라운 결정은 아니지만 장기적 영향은 상당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 가즈프롬 네프트 임원 세르게이 바쿠렌코 역시 UAE가 최대 30% 수준의 생산 확대를 추진해 왔지만 기존 틀 안에서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결국 이번 탈퇴는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 속에서 드러난 일회성 충격이 아니라, 산유국들이 더 이상 같은 이해관계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에 가깝다. OPEC은 그동안 감산과 증산을 통해 유가 방향을 좌우하는 핵심 기구였지만, 주요 회원국의 전략이 엇갈리기 시작하면 시장 통제력은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UAE와 사우디의 균열이 더 뚜렷해질 경우 중동 산유국 내부의 결속도 예전 같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전쟁이 진정된 뒤에도 OPEC의 가격 조정 능력을 약화시키고, 국제 유가를 지금보다 더 변동성 큰 구조로 바꿔놓을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