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투자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섰고, 이에 따라 대기 자금이 사상 최고 수준까지 불어났다. 증시 주변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부터 국내 양도소득세 세제 개편안까지 여러 변수들이 얽히며 자본 유입 대신 ‘실탄’만 쌓이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70조 3,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사흘 전인 1일에는 무려 71조 8,000억 원으로, 이는 2022년 1월 이후 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다. 투자자예탁금은 개인 등이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계좌에 남겨두거나 주식을 매도한 후 찾지 않은 자금으로, 시장 진입을 준비하는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된다. 지난달 중순 60조 원대로 잠시 줄었던 이 금액은 이달 들어 다시 70조 원대를 회복하며 머물고 있다.
이와 함께 머니마켓펀드(MMF)의 설정액도 233조 9,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시장의 유동 여력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MMF는 만기 짧은 한국은행 통안증권, 국채, 기업어음(CP) 등에 투자하는 초단기 금융 상품으로, 확정된 수익률은 낮지만 유동성과 안정성이 높아 기관 및 개인 투자자의 대기 자금 창구로 활용된다. 이외에도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는 91조 3,000억 원으로 역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자금은 넘치지만 투자처는 오리무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중심 무역 정책은 일단 일차적 관세 협상에서 일정 수준 정리되었으나, 반도체와 바이오 등 주요 산업군을 대상으로 한 품목별 관세 도입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이는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분야인 만큼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신증권의 이경민 연구원은 “2월 이후 줄곧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한 추가 관세 논의가 반복되고 있다”며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단기적으로 글로벌 증시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시장에선 세제 개편안이 또 하나의 불확실성 요인이다. 정부가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기존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해당 기준이 강화되면 과세 대상자가 급증해 증시에서 자금 이탈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정치권과 기획재정부 간 세제 개편안 조율이 진행 중이며, 추후 일부 완화나 유예 가능성도 열려 있지만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
이처럼 대외적으로는 트럼프 정부의 무역 압박, 대내적으로는 세금 정책의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 증시는 뚜렷한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관망을 선택하며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정책 리스크 해소 없이는 증시 자금의 본격적인 유입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결론적으로, 막대한 규모의 대기 자금은 증시 반등의 불씨일 수 있지만,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정책 변수들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관망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