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자산운용사 아문디가 한국 주식시장을 주요 신흥국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만한 시장 중 하나로 평가했다. 기업 실적 개선 속도에 비해 주가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고, 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반도체 수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흐름이 맞물리면서 투자 매력이 커졌다는 판단이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아문디는 최근 발표한 신흥국 주식 투자 전망 보고서에서 한국 증시가 다른 신흥국은 물론 일부 선진국 시장과 비교해도 저평가 상태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 회사는 시장 컨센서스, 즉 증권가와 투자기관들의 평균 전망치를 기준으로 볼 때 2026년 한국 기업의 주당순이익 성장 기대치가 91%에 이르러 신흥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주당순이익은 기업이 벌어들인 순이익을 주식 수로 나눈 값으로, 통상 기업 실적과 주가 평가의 핵심 지표로 쓰인다.
아문디는 특히 한국 증시의 강점으로 기술주의 실적 모멘텀을 꼽았다. 한국과 대만의 하드웨어 기업들은 인공지능 투자 확대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고 있는데, 통상 메모리 가격이 오르면 기업들이 생산을 늘려 공급이 빠르게 확대되지만 아직은 그런 움직임이 뚜렷하지 않다고 봤다. 공급이 급증하지 않으면 가격과 수익성이 함께 유지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반도체 기업 실적에 유리한 환경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아문디는 자체 전망이 시장 평균치보다는 다소 보수적이라고 하면서도, 수익성 개선과 우호적인 기술 사이클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중동 분쟁 같은 외부 변수도 언급됐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수출 비중이 큰 경제 구조를 갖고 있어 국제 유가 상승이나 세계 수요 둔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아문디는 이런 요인이 한국 경제와 증시에 미치는 전반적인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중동 정세 불안이 불거진 직후 한국 증시에서 매도세가 나타났지만, 이후 비교적 빠르게 회복한 점도 이런 평가의 근거로 제시됐다.
아문디는 여기에 정부와 시장이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지배구조 개혁도 한국 증시의 중기적인 상승 여력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봤다. 이는 상장사의 자본 효율성과 주주환원 정책을 높여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려는 흐름을 뜻한다. 아문디는 한국 외에도 대만과 브라질에는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했고, 인도와 중국에는 중립적 의견을 제시했다. 데보라 델보 아문디 선임 신흥국 전략가는 한국이 에너지 수입국이라는 약점이 있지만 기술주 비중이 높고 재정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양호해 미국보다 매력적인 가격 수준에서 인공지능 관련 투자 노출도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한국 증시가 반도체 업황, 수출 회복, 기업가치 제고 정책의 실제 성과에 따라 신흥국 내 차별화된 강세를 이어갈 가능성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