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가 신규 정제설비 투자를 제약하면 이미 대규모 투자를 마친 정유사의 기존 설비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IBK투자증권은 9일 보고서에서 에쓰오일(S-Oil)을 정유 업종 최선호주로 유지했다. 이동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상은 신규 증설의 문턱을 높이고 고원가 노후 설비의 퇴출 압력을 높인다”고 말했다.
정유업은 대규모 자본을 먼저 투입해야 하는 자본집약 산업이다. 금리가 오르면 신규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 비용이 늘고 투자금 회수 가능성을 계산할 때 적용하는 할인율도 높아져 증설 경제성이 낮아질 수 있다.
환경 규제 대응과 설비 고도화를 위해 추가 투자가 필요한 노후 정제설비는 자본비용 상승으로 퇴출 압력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이미 투자를 마친 경쟁력 있는 설비는 신규 설비로 대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 연구원은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지 않는다면 기존 정제설비의 가동률과 상대적인 자산가치는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며 “이미 대규모 투자가 집행된 S-Oil의 정제설비는 신규 설비의 경제성이 낮아질수록 대체하기 어려운 자산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금리와 정제마진의 연결고리로는 재고가 제시됐다. 원유와 석유제품은 상당한 운전자본이 필요한데 금리가 상승하면 정유사와 유통업체의 재고 금융비용이 커져 적정 재고 수준을 낮추려는 유인이 생길 수 있다.
재고가 낮은 상황에서는 정기보수나 예상치 못한 설비 정지, 계절적 수요 증가 같은 수급 충격에 제품 현물가격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휘발유·경유·항공유 가격이 원유 가격보다 빠르게 오르면 정유사가 원유를 제품으로 바꿔 얻는 정제마진이 확대될 수 있다.
이 연구원은 “지금 정유 업종에서는 정제마진의 고점보다 지속기간을 더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다”며 “수요가 크게 늘지 않더라도 공급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높아진 가동률과 정제마진이 과거 평균으로 빠르게 돌아가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정제마진은 원유를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으로 정제해 얻는 수익성을 가리킨다. 정유사 실적은 유가 자체보다 정제마진과 설비 가동률이 어느 수준에서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금리 상승은 자산별로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먼 미래의 이익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성장주는 할인율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지만, 이미 구축된 설비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자산은 상대적으로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 사례도 제시됐다. IBK투자증권은 2004~2006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사이클과 2022~2023년 금리 인상 구간에서 정유주가 시장 대비 초과 수익을 냈다고 분석했다.
이 분석은 금리 상승이 정유주에 미치는 영향을 수요 둔화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수요가 급격히 꺾이지 않는다면 공급 여력과 설비 가동률, 재고 수준이 정유업 수익성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다만 고금리가 정유사에 항상 유리한 것은 아니다. 수요가 크게 줄거나 공급 여력이 충분해지면 정제마진과 설비 가동률이 약해질 수 있어 금리와 정유주 사이의 관계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이번 분석은 신규 증설이 제한되는 환경에서 기존 설비의 희소성과 현금창출력이 부각될 가능성을 설명했다. S-Oil의 설비 가치가 실제 실적과 주가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수요와 공급 여건, 정제마진의 지속 기간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