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결제사업자 36곳을 디지털 유로 파일럿 참여자로 선정하며 2029년 첫 발행 가능성을 열어뒀다. 디지털 유로는 발행 확정 단계가 아니라 입법, 기술 검증, 시장 참여를 함께 진행하는 단계다.
조아힘 나겔(Joachim Nagel) 도이체 분데스방크 총재는 6월 24일 프랑크푸르트 국제은행포럼 연설에서 디지털 유로를 일상 결제의 디지털화와 유럽의 결제 주권, 디지털 금융 경쟁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시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이 연설을 6월 30일 공개했다.
나겔 총재가 든 출발점은 현금 사용 감소다. ECB의 2024년 결제태도 조사에서 유로존 POS 결제 가치 중 현금 비중은 39%였다. 온라인 결제 비중은 2019년 18%에서 2024년 36%로 늘었다. 현금을 계속 결제 선택지로 둘 필요가 있다고 답한 소비자는 62%, 디지털 결제나 은행 활동에서 프라이버시를 우려한다고 답한 소비자는 58%였다.
나겔 총재는 디지털 유로가 현금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보완하는 디지털 중앙은행 화폐라고 설명했다. 보유 한도와 무이자 구조는 금융안정을 위한 장치로 제시했다. 결제액이 보유 한도를 넘을 경우 연결된 은행 계좌에서 부족분을 자동 이체하는 방식도 함께 언급했다. 디지털 유로를 투자 수단이나 은행 예금 대체재로 설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결제 주권도 핵심 논리다. 나겔 총재는 유로존 카드 결제의 3분의 2 이상이 비유럽 시스템을 통해 처리되고, 유로존 21개국 가운데 13개국에는 자체 결제 솔루션이 없다고 지적했다. 유로존은 2026년 1월 불가리아 가입 이후 21개국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입법 절차도 진행 중이다. 유럽의회는 7월 9일 디지털 유로 협상 개시를 416표 찬성, 169표 반대, 22표 기권으로 승인했다. ECB는 EU 이사회 입장과 유럽의회 입장 채택 이후 삼자협상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최종 발행 여부는 관련 규정이 채택된 뒤 ECB 이사회가 결정한다.
시장 참여도 확인됐다. ECB는 7월 14일 50건 넘는 신청 가운데 결제사업자 36곳을 파일럿 참여자로 선정했다. 명단에는 아디옌(Adyen), 도이체방크(Deutsche Bank), 레볼루트뱅크(Revolut Bank UAB), 스트라이프 테크놀로지 유럽(Stripe Technology Europe) 등이 포함됐다. 파일럿은 2027년 하반기 시작해 12개월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쟁점은 보상모델과 수수료 배분으로 옮겨갔다. 유로뉴스는 은행과 결제사업자가 어떤 방식으로 보상받을지, 가맹점 수수료를 어떻게 나눌지가 협상의 민감한 사안이라고 전했다. ECB는 개인의 기본 사용은 무료로 두되 결제사업자가 부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프라이버시 논쟁도 남아 있다. ECB는 오프라인 결제에서 지급인과 수취인만 개인 거래 세부 정보를 알 수 있고, 유로시스템이 이용자를 결제 데이터로 직접 식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나겔 총재도 유로시스템이 가명 처리된 보유·거래 패턴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유로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공적 화폐라는 점에서 민간 스테이블코인이나 가상자산과 다르지만, 모든 전자결제는 데이터 흔적을 남긴다. 본지는 앞서 디지털 유로 논의가 개인정보 보호 장치의 법제화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ECB는 관련 규정이 채택된 뒤 최종 발행 여부를 결정하고, 파일럿은 2027년 하반기부터 12개월간 진행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