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글로벌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 투자금이 220억 달러(약 31조 6,000억 원)를 기록하며 최근 몇 분기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지난해 하반기 대비 11.1%, 전년 동기 대비 5.3% 늘어난 수치지만, 팬데믹 직후 정점을 찍었던 투자액과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가 크다. 2021년 상반기에는 687억 달러(약 98조 8,000억 원)가 몰렸던 데 비하면 다소 초라한 회복이다.
투자 건수는 감소했으나 규모는 대형화된 모습이다. Crunchbase에 따르면 상반기 중 총 1805건의 딜이 성사됐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1.4% 급감한 수치다. 딜 수는 줄었지만, 1억 달러 이상 대규모 투자가 30건 넘게 이뤄져 전체 투자액 증가로 이어졌다.
이 같은 회복 흐름은 일부 핀테크 기업들의 IPO와도 무관치 않다. 올해 들어 서클(Circle)과 차임(Chime) 등 여러 핀테크 기업이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면서 시장 전반에 낙관론을 불어넣고 있다. 서클은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첫날 주가가 168% 급등해 시가총액 167억 달러(약 24조 원)를 넘겼으며, 이후 200달러 이상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차임 역시 나스닥 입성 당일 37% 급등하며 상장 효과를 입증했다. 위스프런트(Wealthfront), 제미니(Gemini), 나반(Navan)도 현재 상장을 추진 중이다. 다만 스웨덴의 클라르나(Klarna)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 정책을 이유로 IPO 계획을 보류해 정치적 리스크가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투자 지형도 변화 중이다. 2025년 상반기 핀테크 투자에 가장 활발했던 QED인베스터스는 500만 달러 이상 규모의 투자를 다수 이끌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외에도 세쿼이아 캐피탈, 해크 VC, 액셀, 폴리체인 등도 굵직한 투자를 주도했다. 특히 MGX는 23억 달러 이상 규모의 초대형 라운드를 주도하며 가장 많은 자금을 끌어낸 투자사로 꼽혔다. 대표적으로 바이낸스(Binance)는 MGX 주도로 20억 달러(약 28조 8,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런 가운데 투자사들의 전략도 한층 정교해지고 있다. QED 파트너 카밀라 비에이라는 “시장 기반이 안정화되고 창업자들이 초반부터 건실한 기반을 갖춘 사례가 늘고 있다”며 B2B 인프라, AI 기반 핀테크, 기후 금융 분야에서 상승 모멘텀이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소비자 대상 핀테크 가운데 제품이나 데이터 경쟁력 없는 기업에는 여전히 보수적 접근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TTV캐피탈의 닐 카푸르 역시 “AI가 금융 산업 전반에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슈퍼 사이클'을 촉발한 시점에 진입했다”며 희망적인 전망을 내놨다. 투자 대상 기업 중 다수가 설립 2년 미만 신생 기업으로, 올해 투자 건수가 지난해 대비 3배 늘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핀테크 투자사 베터 투모로우 벤처스(BTV)의 관점도 유사하다. 공동설립자 실 모넛은 “살아남은 스타트업들이 이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임베디드 핀테크와 회계·급여 등 백오피스 영역에 AI가 결합될 때 가장 큰 가능성이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실효성 한계를 지적하며, 미국 내 결제 문제까지 해결할 해결책으로 보는 시각은 과도하다고 덧붙였다.
시장 회복의 또 하나의 동력은 M&A와 IPO 재개다. 인피니티 벤처스의 제레미 존커는 “라운드가 빠르게 선점되고, 인수합병 활동이 늘고 있으며 IPO 논의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성장률만 쫓던 시대는 지났다. 근본이 탄탄한 기업만이 주목받는 국면”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프로펠 벤처 파트너스의 데이비드 모트는 핀테크의 전반적 회복세를 Coinbase, 로빈후드(Robinhood), Revolut, 누뱅크(Nubank) 등 기존 강자들의 영향력 회복과 AI, 암호화폐 등의 융합 흐름에서 찾았다. 그는 “이 세 가지 트렌드가 핀테크 시장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총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