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가 주니퍼네트웍스 인수 이후 처음으로 양사가 통합된 전략과 기술을 공개하며 인공지능(AI) 시대의 네트워크 혁신을 본격화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디스커버 2025' 행사에서 HPE는 아루바와 주니퍼 미스트를 통합한 AI 기반 네트워크 플랫폼, 신형 데이터센터 하드웨어, AI 팩토리 확장을 위한 협업 방안 등 대규모 로드맵을 발표했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아루바 센트럴과 주니퍼 미스트의 기능을 통합해 단일한 'AI-Native 플랫폼'으로 구축한다는 점이다. 아루바는 네트워크에 접속된 기기들의 행동을 추적하고, 미스트는 AI 기반 문제 해결 기능이 강점이다. 이제 두 플랫폼이 마이크로서비스 구조로 서로의 기능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예컨대 미스트의 대규모 사용자 경험 분석 모델이 아루바 센트럴에 탑재되고, 아루바의 에이전틱 메시 기술이 미스트로 이전된다. 두 플랫폼은 2026년 1분기부터 통합 기능을 제공하며, '한 번 구축하고 두 번 배포한다'는 전략 아래 고객 경험을 일관되게 제공할 예정이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도 통합이 본격화된다. 아루바 또는 주니퍼에서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액세스 포인트(AP)를 선보였으며, 첫 모델은 Wi-Fi 7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고객들은 브랜드에 구애받지 않고 장비를 혼합해 운용할 수 있다. 라미 라힘 HPE 네트워킹 총괄 부사장은 “에이전틱 AI 기술을 통해 이제 네트워크는 스스로 문제를 감지하고, 원인 분석 후 조치까지 진행하는 ‘셀프 드라이빙’ 체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HPE는 AI용 데이터센터 시장을 겨냥한 신형 장비도 대거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소형 AI 추론용 라우터 ‘MX301’과 고성능 스위치 ‘QFX5250’이다. MX301은 공장, 병원 등 엣지 환경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AI 클러스터로 연결하는 장치로, 소형이면서도 1.6Tbps의 처리 속도를 제공한다. 한편 QFX5250은 브로드컴의 최신 실리콘 '토마호크6' 기반에 전액 액체냉각 시스템을 지원하며, 초고속 GPU 랙 간 통신을 겨냥해 설계됐다. 이는 엔비디아 및 아리스타 대비 경쟁력을 갖춘 제품으로, AI 데이터센터 내 차세대 이더넷 인프라 수요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AI 팩토리 인프라 확장도 가시화되고 있다. HPE는 주니퍼의 MX 및 PTX 라우팅 플랫폼을 엔비디아 AI 팩토리의 표준 아키텍처에 포함시키며, 멀티클라우드 및 장거리 데이터센터 연결까지 가능하게 했다. 또한 AMD의 신규 ORv3 AI 랙 플랫폼 ‘헬리오스’에 Ethernet 기반 확장 스위치를 제공하며, 폐쇄된 GPU 인터커넥트 위주의 환경에 개방형 대안을 제시했다.
데이터 준비 문제도 HPE의 중요 아젠다로 떠올랐다. 기업들은 AI 도입 시 GPU 부족보다 오히려 데이터 정제 및 구조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HPE는 ‘X10k 데이터 인텔리전스 노드’를 선보였다. 이 장비는 메타데이터 태깅, 벡터 생성, RAG 기반 데이터 포맷팅을 자동화해 GPU 활용도를 획기적으로 높인다. 이와 함께 고속 복구를 위한 플래시 기반 스토어원스 7700과 대용량 하이브리드 모델인 스토어원스 5720도 새롭게 추가된다.
클라우드 및 가상화 환경도 업데이트됐다. 프라이빗 클라우드 AI 플랫폼은 엔비디아 RTX 6000 GPU 및 새로운 추론 모델을 추가 지원하며, GPU를 다중 사용자로 나눠 쓰는 기능도 도입했다. 모피어스 플랫폼은 주니퍼 네트워크 및 오토메이션 도구 Apstra와 연계되며, 워크로드 이동 시 자동으로 네트워크 설정을 따라잡을 수 있게 했다.
운영 측면에선 옵스램프와 그린레이크 인텔리전스를 업데이트해 컴퓨트, 스토리지, 네트워크 및 애플리케이션 전반에 대한 가시성을 강화했다. 자연어 기반 트러블슈팅 기능과 MCP(Model Context Protocol) 적용으로 외부 AI 에이전트 연동성도 확대됐다. 이 모든 기능은 술어적 사고가 가능한 에이전틱 AI 기반 IT 운영 체계를 구축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종합적으로 이번 발표는 HPE가 주니퍼 인수를 통해 어떻게 AI 중심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존에 아루바 인수 후 별도 운영에 그쳤던 방식을 벗어나, 이제는 통합을 통해 ‘HPE만의 AI 제품군’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아루바와 미스트 간의 긴밀한 통합 전략이 고객 이탈 우려를 줄이고 있으며, 2026년까지 더 많은 통합 완성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