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의 저장 용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테스트에 소요되는 시간이 새로운 병목 지점으로 떠올랐다. 32테라바이트급 제품은 이미 흔하고, 내년 초에는 256테라바이트 모델 출하도 예고됐지만, 그만큼 드라이브를 실사용 상태로 만들기 위한 사전 조건 작업(preconditioning) 시간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샌디스크는 ‘샌디스크 슈도 랜덤(SPRandom)’이라는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기존 방식보다 최대 90% 빠르게 테스트를 마칠 수 있게 설계된 이 기술은, 원래 여러 단계에 걸쳐 진행되던 과정을 단일 쓰기 작업으로 대체함으로써 효율을 극대화한다.
SSD 사전 조건 작업은 제품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 절차다. 보통은 전체 용량에 순차적으로 데이터를 쓴 뒤, 비순차적 랜덤 쓰기로 오버프로비저닝 영역을 고르게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저장 용량이 폭증하면서 이 방식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문제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샌디스크에 따르면 32테라바이트급 드라이브 하나를 준비하는 데에만 160시간 이상 걸리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샌디스크의 엔터프라이즈 SSD 아키텍처 그룹 소속 수석 엔지니어인 스티븐 스프라우스는 기존 방식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진단하며 SPRandom의 특징을 설명했다. 이 기술은 드라이브 전체를 순차적으로 쓰는 대신, 오버랩(overlap)되는 쓰기 패턴을 설계해 디스크 내부에 ‘유효하지 않은 상태’의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다. 이는 SSD 내에서 사용되지 않는 오버프로비저닝 영역을 수학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으로, 실제 운영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데이터 이동과 정리 과정을 단기간에 구현해낸다.
결과적으로, 기존 방식으로는 3일 이상 걸리던 작업을 SPRandom은 6시간 안팎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이는 개발 테스트와 고객 품질 인증(qualification) 과정에서 큰 변화를 의미한다. 스프라우스는 “테스트 주기가 짧을수록 디버깅 속도가 빨라지고 제품 출시도 앞당겨진다”며 “이제는 하루에 테스트와 디버깅을 모두 마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샌디스크는 이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업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플렉시블 I/O 테스터(FIO) 벤치마킹 툴’에 통합했다. 회사 측은 “해당 방법은 드라이브 종류와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는 범용적인 접근법이며, 업계 전체의 이익을 위해 상업화보다는 공유를 택했다”고 밝혔다. 특히 오픈컴퓨트 프로젝트(OCP)나 스토리지 네트워크 산업협회(SNIA)와 같은 산업 생태계 참여 경험이 이 같은 결정을 견인한 배경으로 알려졌다.
샌디스크의 엔터프라이즈 SSD 제품 마케팅 책임자인 제프 폭트만은 “제품 한 개의 사전 조건 작업 시간이 3일이면, 전체 제품군의 출하가 지연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며 “이 기술은 궁극적으로 AI 분석, 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 인프라처럼 초대용량 스토리지를 필요로 하는 차세대 워크로드의 가속화를 위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 전반에서 초고용량 SSD의 확산을 가로막던 실질적인 장벽이 해소되면서, 고객과 공급업체 모두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