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공지능(AI) 스타트업에 대한 민간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지만, 업계 현장에서는 여전히 지나치게 보수적인 투자 문화와 불리한 생태계가 스타트업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5년 8월 21일 서울에서 AI 스타트업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고, 이들의 애로사항과 제도 개선 요구를 청취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스타트업 대표들과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국내 투자 관행이 혁신 기업의 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창업 초기 단계부터 매출 등의 실적을 중시하는 풍토는 장기적 성장 가능성을 키우는 데 장애가 된다는 목소리가 컸다.
김연석 제틱AI 대표는 “지난 1년 안에 창업한 회사가 투자 유치를 시도하면, 대부분 투자사들이 실적부터 따지는 분위기”라며, 이는 오픈AI처럼 장기적 연구에 기반한 기업이 국내에서는 탄생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단기 매출을 내는 구조가, 오히려 글로벌 시장에서의 확장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퀀텀벤처스코리아 이동우 전무는 “AI 산업은 당연히 일부 버블이 존재하는 시기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네이버나 카카오가 나올 수 있다”며, 스타트업 투자 전용 코스닥 펀드 조성, 퇴직 연금의 투자 참여 확대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신진오 와이앤아처 대표는 “현재의 세제 혜택만으로는 민간 투자를 끌어들이기 어려우며, 보다 직접적이고 신속한 유인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정지하 트립비토즈 대표는 AI 기술이 데이터 중심의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AI 스타트업이 국내에서 자리를 잡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플리토의 이정수 대표는 “AI 인재 유출 논의가 많지만, 결국 인재는 스타트업이 성장하면 자연히 돌아온다”며, 미국에서 유니콘으로 성장한 센드버드 사례를 들며 한국 내 부진한 소프트웨어-as-a-service(SaaS) 시장 규모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부 측에서는 투자 환경 개선의 방향성을 재확인했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스타트업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민간과 공공 투자의 선순환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우정사업본부는 기업 기반의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앞으로 5년간 1조 원을 투자할 계획도 함께 밝혔다.
이 같은 논의는 앞으로 스타트업 친화적 투자 생태계 조성을 위한 주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투자 관행과 정책 구조가 보다 유연해질 경우, 국내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AI 기업이 배출되는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