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인공지능(AI) 기술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기에는 제도적 기반과 사회적 환경이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산기협)는 8월 28일 발간한 '2024년 한국의 디지털·AI 경쟁력 보고서'에서 세계 주요 연구기관의 평가를 종합해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영국 옥스퍼드 인사이츠, 토터스 인텔리전스, 미국 스탠퍼드대 인공지능 연구소(HAI) 등 국제적 권위를 가진 기관들의 평가가 반영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IMD는 한국의 디지털 경쟁력을 세계 67개국 중 6위로 평가하며, 연구개발(R&D) 지출 규모나 첨단기술 특허 수에서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반면, 인재의 국제경험(45위)이나 유입을 위한 이민 법제도(54위)는 경쟁국에 비해 크게 뒤처진 부분으로 언급됐다. 스탠퍼드 HAI도 한국이 AI 분야 특허 출원에서 1위를 기록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글로벌 인재가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고 오히려 빠져나가는 현실을 지적했다.
옥스퍼드 인사이츠 역시 유사한 시각을 보였다. 한국은 정부 차원의 AI 준비지수에서 3위에 올랐으며, 혁신 역량 부문에서는 전년보다 22단계나 상승한 3위를 기록했다. 이는 적극적인 지원 정책과 활발한 민간 연구개발 활동 덕분이다. 그러나 ‘거버넌스와 윤리’ 항목에서는 성적이 저조해, 기술 발전에 비해 제도적 통제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평가도 함께 나왔다.
토터스 인텔리전스는 우리나라의 기술 인프라나 개발 능력, 정부 전략에서는 높은 점수를 줬지만, 실제 운영환경(35위) 점수는 전년보다 크게 하락했다. 이는 규제 불확실성과 사회적 수용도 등 복합적인 외부 요인을 반영한 결과로, 기술 활용이 제도와 사회 분위기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산기협은 이처럼 기술력과 투자 수준에서는 강점이 분명하지만, 글로벌 인재 유치와 연구 교류를 막는 환경적·법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인재의 국제경험 부족, 유연하지 못한 이민 제도, 해외 유출이 심각한 인력정책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우리나라가 AI 기술 리더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단순한 기술 투자를 넘어서, 제도 개선과 글로벌 열린 생태계 조성이 중요 과제가 될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인재 유출을 막고 우수한 해외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적 결단이 빠르게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