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에 대한 비즈니스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기업 운영 효율성은 향상됐지만 인간의 인지능력을 기계에 넘기는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경영진의 약 97%가 생성형 AI가 자사와 산업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이메일 자동완성 기능부터 보고서 작성용 대형 언어모델에 이르기까지, AI는 이미 실무 전반에서 인간의 판단과 창의성 일부를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다. 이는 정보 저장과 처리, 사고 능력, 심지어 창의성까지 AI에 맡기면서 나타나는 인간 인지 기능의 점진적인 위축을 뜻한다. 기존에도 계산기나 메모장 등 외부 도구를 활용해 사고 과정을 보완해왔지만, AI는 한 차원 높은 연산과 예측 능력으로 인간의 본연의 판단력을 점차 대체하고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정보를 외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느낄수록 해당 내용을 기억하려는 경향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2011년 하버드대 베치 스패로 교수는 온라인에 정보가 저장돼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사실을 기억할 확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AI는 이러한 현상을 증폭시키는 촉매다. 예컨대, 사소한 사실조차도 사람들이 굳이 자신의 기억을 되짚지 않고 챗GPT나 구글 제미니처럼 AI 툴에 의존해 얻는 것이 일상화됐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AI의 편의성이 오히려 전문성 약화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케팅팀은 생성형 툴을 활용해 캠페인을 구성하고, 금융 분석가는 데이터 패턴 추출을 AI에 맡기며, 개발자들은 코드 작성 보조 툴을 통해 오류를 해결한다. 단기적으로는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문제 해결력·비판적사고·창의력 같은 본질적인 역량이 퇴화하는 ‘숨은 비용’을 치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AI 사용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결정권과 책임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수많은 선택지를 AI가 제안하면서 인간은 기계의 판단에 수동적으로 따르며 비판과 재검토를 생략하게 된다. 이는 곧 조직의 대응력과 윤리적 감시 기능이 약화될 위험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방치하기보다는 ‘균형 있는 AI 활용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일부 기업들은 ‘AI 없는 워크숍’, ‘비알고리즘 브레인스토밍’ 등을 운영하며 AI 비보조 환경에서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의도적으로 훈련시키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인간의 두뇌 근력을 유지시키는 운동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AI를 전지적 존재가 아닌 비판 가능한 조력자로 인식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AI가 제공하는 정보나 판단을 그저 수용하지 않고, 이를 검증하고 보강하는 능동적 사고 훈련이 필요하다. 예컨대, 기자가 AI로 수집한 배경 정보를 바탕으로 직접 팩트를 검증하고 고유한 문체로 기사를 작성하는 식이다.
교육 현장 또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초기에는 AI를 부정하는 움직임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AI와의 협력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AI의 제안을 무작정 따르기보다는 비판하고 개선하며, 언제 수용하고 언제 거부할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식이다.
기업 문화 자체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순히 ‘속도’를 중시하는 조직은 당연히 AI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창의성·깊이·분석력을 중시하는 문화는 구성원들에게 더욱 적극적인 참여와 사고를 요구하게 되며, AI는 그 보조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다. AI 도입 가이드라인이나 업무별 알고리즘 사용 기준 설정 역시 이런 문화를 제도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
향후 정책적 대응이 구체화될 가능성도 있다. 유럽연합과 미국에서는 AI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초점을 맞춘 논의가 이미 진행 중이다. 인지적 외주화 자체를 직접 규제 대상으로 삼은 법안은 아직 없지만, 장기적으로 디지털 의존성과 인간 사고력 저하에 관한 연구들이 법적‧윤리적 토대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인지적 외주화라는 문제는 AI 시대에 인간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기계가 암기와 정보 통합, 추천 기능을 넘어서고 있는 시대에 인간의 가치는 창의성과 판단력, 윤리적 통찰력에 있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기계에게 사고의 일부를 맡는 일이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산업화 초기, 반복적인 육체 노동에서 사람을 해방시킨 자동화처럼, AI는 반복적인 사고작업을 덜어줌으로써 더 큰 전략과 감성, 비전을 고민할 시간을 제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인간이 자기 사고에 대한 ‘주인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AI는 이미 우리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놨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인간 사회가 이러한 변화와 함께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과 역량을 지켜낼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비판, 성찰, 적극적 학습의 습관을 갖춘 사회만이 AI를 조력자로 삼을 수 있다. 편의성을 맹신하지 않되, 그 효용을 거부하지도 않는 균형 속에 미래의 인간 지성이 존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