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 기술기업들이 인공지능 투자 자금을 공격적으로 끌어오자, 금융시장은 신용부도스와프(CDS·기업이 빚을 갚지 못할 위험에 대비해 드는 일종의 보험)의 가격을 통해 어느 기업이 버틸 체력을 갖췄는지 가려내기 시작했다.
블룸버그통신은 29일(현지시간) 미국 빅테크의 대규모 인공지능 투자 계획이 신용시장에 즉각 반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CDS 프리미엄은 기업의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인데, 최근 주요 인공지능 관련 기업들에서 일제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오라클의 CDS 프리미엄은 이번 주 215bp(1bp=0.01%포인트)로 수년 만의 최고 수준에 올라섰고, 지난해 말 약 145bp에서 큰 폭으로 뛰었다. 스페이스X도 지난달 거래가 시작된 뒤 50% 이상 올라 29일 기준 185bp를 기록했다. 엔비디아, 메타플랫폼스, 아마존, 알파벳도 이들보다는 낮지만 나란히 고점을 새로 썼다. 시장에서는 인공지능 경쟁이 단순한 성장 기대를 넘어, 누가 과도한 차입과 현금 소진을 견딜 수 있느냐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신용 위험이 커지면 실제 자금 조달 비용도 함께 뛴다. 오라클의 2054년 만기 채권 수익률은 올해 들어 거의 1%포인트 오른 7.8%를 기록했다. 기업들은 유럽 회사채 시장은 물론 미국 상업용 모기지 채권, 레버리지론까지 가리지 않고 자금을 조달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의 경계심은 오히려 높아지는 분위기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토르스텐 슬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채권 발행 급증으로 최종 조달금리가 올라가면 데이터센터 투자 수익률이 시장의 기대수익을 밑돌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설비투자 확대 속도도 자연히 둔화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인공지능 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는 선투자 규모가 워낙 커서, 금리와 신용비용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기업별로 보면 시장의 평가는 더 뚜렷하게 갈린다. 코어위브는 현재 대출 시장에서 26억달러를 조달하려 하고 있는데, 28일 기준 CDS 프리미엄이 855bp로 인공지능 투자 기업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는 시장이 향후 5년 안에 이 회사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을 약 50% 수준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코어위브는 과거 암호화폐 채굴 업체에서 데이터센터 운영사로 바뀐 기업으로, 북미와 유럽에 약 50개의 데이터센터를 두고 있지만 2022년부터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다. 오라클은 지난 2월 미국 우량 회사채 시장에서 250억달러를 빌렸고, 올해 만기 전환사채와 보통주 매각에도 나섰다. 스페이스X는 투자등급을 받았지만, 6월 250억달러 규모 채권 발행 이후 마이너스 현금흐름과 사업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며 신용도 평가가 흔들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기초체력이 강한 기업들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평가다. 메타는 지난 4월 미국에서 250억달러 규모 회사채를 발행했고, 지난해 450억달러가 넘는 현금흐름과 AA 신용등급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인공지능 투자 부담이 부각되면서 CDS 프리미엄은 지난해 말 약 56bp에서 28일 95bp로 올랐다. 알파벳은 5월 첫 엔화 채권을 발행했고, 올해 전 세계에서 약 600억달러 규모 채권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사상 최대 유로화 채권과 첫 캐나다달러 채권도 내놨다. 다만 분기별 현금흐름은 상장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CDS 프리미엄은 3월 약 50bp에서 최근 65bp 이상으로 상승했다. 아마존도 올해 미국에서 620억달러 규모 채권을 발행한 데 이어 유로화, 스위스프랑, 캐나다달러 시장으로 자금 조달처를 넓혔다. 지난해 77억달러의 현금흐름을 냈지만 인공지능 투자 확대에 따라 이 수치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2017년 이후 채권을 발행하지 않았고 AAA 등급을 유지하고 있어, CDS도 지난해 말 35bp에서 최근 53bp로 오르는 데 그쳤다.
결국 금융시장이 보고 있는 것은 인공지능 기술력 자체만이 아니라, 그 기술 경쟁을 얼마나 오래 감당할 수 있는 재무 체력이 있는지다. 당분간은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와 자금 조달 확대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신용 비용이 계속 올라가면 현금창출력이 약한 기업부터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인공지능 산업 안에서도 자금조달 능력과 수익성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더 분명히 갈리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