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속에서 엔비디아(NVDA)와 브로드컴(AVGO)을 서로 경쟁 관계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전략으로 AI 시장에서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AI 연산 인프라를 중심으로 한 수직 통합 플랫폼 전략으로 시장을 이끌고 있으며, 브로드컴은 네트워킹과 맞춤형 반도체 중심의 고수익 프랜차이즈 모델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고 있다.
엔비디아는 GPU에서부터 시스템, 소프트웨어에 이르는 완전한 스택을 구축해 'AI 팩토리'라는 새로운 연산 단위를 정의했다. 이 회사의 하드웨어는 호퍼(Hopper)와 블랙웰(Blackwell) GPU, 이를 연결하는 NVLink 및 NVSwitch와 같은 고속 인터커넥트 기술로 구성된다. 이들이 결합된 연산 파드는 최대 72개의 GPU를 하나의 논리 시스템으로 만들어 AI 학습에 최적화된 고성능 연산 환경을 제공한다. 여기에 멜라녹스 인수를 통해 흡수한 인피니밴드(InfiniBand) 네트워크와 자체 이더넷 기술(Spectrum-X)까지 결합해, 전체 시스템의 확장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역시 엔비디아의 견고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핵심 중 하나다. CUDA 및 라이브러리 기반 개발 환경은 수만 명의 개발자를 끌어들이며 타 기업의 진입을 어렵게 만든다. DGX 시스템, NIM 추론 마이크로서비스, 옴니버스(Omniverse) 등의 플랫폼 서비스는 하드웨어를 넘어 AI 산업 전반의 수직 계열화를 가능하게 했다.
이와 달리 브로드컴은 GPU 경쟁을 선택하지 않고, AI 인프라의 기반이 되는 연결 기술과 맞춤형 칩 공급에 집중한다. 토마호크(Thomahawk)와 제리코(Jericho) 스위치, 고속 이더넷 인터페이스, 독자 기술이 적용된 커스텀 실리콘을 통해 구글, 메타, 바이트댄스, 오픈AI 등 주요 AI 기업의 설계 요구에 대응한다. 최근 공개된 100억 달러(약 14조 4,000억 원) 규모의 오픈AI와의 칩 설계 계약은 브로드컴의 전략이 단순한 부품 공급을 넘어서 핵심 AI 아키텍처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로드컴의 핵심 전략은 '열린 생태계(Open)', '확장성(Scalable)', '전력 효율(Power Efficient)'의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NVLink와 같은 폐쇄형 연결 기술에 대비해 브로드컴은 이더넷과 PCIe 같은 오픈 스탠다드를 활용, 대규모 시스템 간 연결을 유연하게 지원한다. 이러한 전략은 특유의 운영 효율성과 맞물리고 있으며, 클라우드 인프라 비용 절감을 원하는 기업들로부터 꾸준한 수요를 이끌고 있다.
또한 브로드컴은 소프트웨어 사업에서도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다. VMware 인수 후 VMware Cloud Foundation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단가 인상과 전체 번들 구매 요구가 논란을 불러왔지만, 고가치를 인정한 일부 고객층과의 장기 계약을 통해 마진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 결과, 70%에 육박하는 운영이익률과 90% 이상의 소프트웨어 총이익률이라는 업계 최상위 수준의 수익 구조를 확보 중이다.
양사의 차별화된 전략은 결국 기술적 트레이드오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엔비디아는 랙 단위에서 최적의 연산 효율과 처리량을 달성하는 NVLink 기반 구조를, 브로드컴은 방대한 노드를 연결하는 이더넷 기반 확장 구조를 강조한다. 전자는 초고성능에, 후자는 대규모 확장성에 유리한 접근 방식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두 기술을 혼합해 각 장점이 극대화된 하이브리드 구조를 구현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재무 실적 또한 두 기업의 전략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연간 매출 1,870억 달러(약 269조 원), 전년 대비 56% 증가라는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GPU와 함께 AI 추론 서비스의 성장으로 새로운 수익원이 창출되고 있으며, 73%의 총이익률과 65%의 영업이익률로 반도체 기업을 넘어 플랫폼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시가총액은 4조 달러(약 5,760조 원)를 돌파하며, AI 시대의 '필수 자산'으로 자리잡고 있다.
반대로 브로드컴은 연간 매출 640억 달러(약 92조 원), 전년 대비 22% 성장이라는 안정적인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AI 칩 관련 매출 비중이 급속히 증가하며 160억 달러(약 23조 원) 수준에 도달했으며, 오픈AI 외에도 구글, 메타 등과 체결한 수년간의 커스텀 반도체 계약이 안정적 수익원을 뒷받침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고마진 구조와 꾸준한 현금흐름 덕분에 시가총액 1조 6,000억 달러(약 2,304조 원)를 넘어섰으며, 가치투자자들에게 지속 가능한 복합 성장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은 상호 대체재가 아닌 상호 보완재에 가깝다. AI 팩토리라는 새로운 기술 산업 패러다임 속에서 엔비디아는 연산의 두뇌를 공급하고, 브로드컴은 해당 시스템들이 서로 효과적으로 연결되어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 기반 기술을 제공한다. AI 산업이 클라우드에서 엔터프라이즈, 나아가 현실 세계로 확산됨에 따라 이 두 기업은 각자의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것이다. 본질적인 경쟁보다도, 전통 컴퓨팅 아키텍처를 대체하는 이 새로운 기술 지형에서 어떻게 주도권을 확보하느냐가 더 핵심적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