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금융투자 도구인 토큰증권(ST·Security Token)의 법제화가 가까워지면서 새 정부 시책에 부합하는 주 활용처를 두고 업계 논의가 활발하다.
토큰증권이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의 국정 구상과 맞물리는 상품이 시장의 주목을 받을 공산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토큰증권은 암호화폐에 쓰이는 기술인 '블록체인'을 써서 안정성과 편의성을 높인 전자 증권으로, 원자재, 미술품, 저작권 등 자산을 쪼개 지분을 갖는 '조각 투자' 수단으로 장점이 뚜렷하다.
13일 금융투자 및 디지털 자산 업계에 따르면 현 정부의 '부동산 투자 쏠림' 해소 기조와 관련해서는 부동산 토큰증권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택 실물에만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집값이 오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만큼, 대체 투자 수단을 발전시켜 이 열기를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 이 대통령과 여당의 시각이다.
즉 부동산에만 고여있던 자금을 증권 시장 등으로 옮겨 집값 과열을 방지하고 경제 곳곳에 돈이 흐르는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국 가계 자산 중 부동산 등 실물자산의 비중은 작년 기준 75.2%에 달한다.
부동산 토큰증권은 아파트나 상가 등을 쪼개 일부 지분을 갖는 금융투자 상품으로, 거액을 대출받아 집 전체를 사는 것과는 본질이 다르다.
이런 토큰증권이 보편화하면 무리해 집을 사지 않아도 유연하게 부동산 기반의 투자를 할 수 있고, 주택 현물에 쏠리는 돈을 분산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관측의 요지다.
예컨대 아파트 기반의 토큰증권으로 배당을 받는 등의 사례가 늘면서, '영끌' 대출이나 갭투자(전세를 낀 집 구매) 등 관행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집 구매'를 지분 투자로 전환하자는 발상은 각계에서 논의가 활발하다.
예컨대 현재 국토교통부는 리츠(부동산투자회사)가 아파트를 공급하면 실수요자가 지분 투자를 하고 임차인으로 거주하는 새 '한국형 리츠' 제도를 연구하고 있다.
예컨대 집값의 30%를 리츠 지분으로 매입하고 나머지 70%에 대해선 월세를 내며 살고, 원하면 리츠 지분을 계속 늘려나갈 수 있게 해 집 때문에 수억 원 주택담보대출을 할 필요가 없게 만들자는 것이다.
디지털 자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토큰증권이 성공하면 투자자의 자발적 펀딩을 통해 다양한 주거 부동산을 공급할 수 있게 돼 주택 시장의 선진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며 "활성화 방안을 연구할 값어치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토큰증권의 합법화 법안(자본시장법 개정안 등)은 현재 국회에 계류된 상태로, 여야 이견이 없어 올해 하반기께 통과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부동산 조각투자는 '금융 샌드박스'(규제유예) 조처에 따라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부동산 토큰증권 발행사는 카사코리아와 루센트블록 등 국내 4곳이 있으며 지금까진 사무용 건물과 물류센터 등 상업 부동산만을 대상으로 했을 뿐 주택 기반의 증권은 발행된 적이 없다. 주택 시장이 민감한 영역이라 애초 금융 당국이 진출을 만류했다고 한다.
현 정부의 벤처 투자 활성화 시책과 관련해서는 비상장사 토큰증권이 주목받는다.
지금껏 벤처나 중소기업은 자금 조달을 위해 벤처캐피탈(VC)이나 은행 대출에 의존했는데, 비상장사 토큰증권을 새 '실탄 확보' 경로로 제공하자는 것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퇴직연금의 벤처 투자 허용, 모태펀드 확충 등 조처를 통해 벤처 투자 기반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실제 해외에서는 중소기업이 토큰증권으로 자금을 모으는 경우가 이미 많다.
포르쉐에 인수된 크로아티아의 전기 자전거 업체 '그레이프 바이크'가 유명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스타트업 시절인 2019년 토큰증권으로 초기 종잣돈 150만달러(약 20억7천만원)를 모았다.
단 비상장사 토큰증권은 난관도 적잖다. 정부의 기존 주식 규제와 부딪칠 공산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증권 플랫폼(기반 서비스) 로빈후드가 오픈AI와 스페이스X 등 '유니콘급' 비상장사 주식을 토큰증권으로 판다고 발표하자, 미 금융당국은 '이는 정식 주식 상품이 아니다'고 반발한 바 있다.
금투업계의 한 관계자는 "종이 기반의 실물 증권이 지금의 전자증권으로 바뀐 것처럼 주식 토큰화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큰 흐름"이라며 "비상장사 토큰증권도 제도적 이슈가 많지만, 자본 수급 여건을 개선한다는 취지에서 실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