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금융당국이 첫 ‘스테이블코인 라이선스’를 발급하며 디지털 자산 시장의 제도권 편입을 본격화했다. 전통 은행 중심 모델을 택한 점과 강력한 규제가 결합되면서, 새로운 금융 인프라 실험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HSBC·스탠다드차타드 컨소시엄 첫 승인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금요일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가 주도하는 앵커포인트 파이낸셜 컨소시엄에 스테이블코인 발행 라이선스를 부여했다. 이번 승인은 2025년 8월 시행된 ‘스테이블코인 조례’ 이후 첫 사례다.
HKMA 에디 유(Eddie Yue) 총재는 “승인된 발행사들이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사업을 추진해 금융과 경제 활동의 비효율을 해소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규제된 스테이블코인이 개인과 기업 모두에 가치를 창출하고, 홍콩 디지털 자산 생태계의 ‘건전한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HKMA는 총 36건의 신청서를 검토했으며, 초기 승인 수를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홍콩 재무사 매튜 찬(Paul Chan) 역시 소수 사업자만 허가하겠다고 언급하며 준비금의 질, 리스크 관리, 자금세탁방지(AML) 체계를 핵심 기준으로 제시했다.
‘민간 화폐’ 전통 잇는 은행 중심 구조
이번 승인에서 눈에 띄는 점은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 등 ‘지폐 발행 은행’이 우선 선정됐다는 점이다. 홍콩은 1846년부터 상업은행이 통화를 발행해온 독특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도 이들 은행은 미 달러를 홍콩 정부의 외환기금에 예치하고, 미 달러당 7.80홍콩달러 고정환율에 따라 채무증서를 발급받아 지폐를 찍는다. 유 총재는 과거 “상업은행이 은 예치금을 기반으로 발행한 지폐는 일종의 ‘민간 화폐’였으며, 스테이블코인은 그 블록체인 버전”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전통 금융 시스템의 연장선에서 은행 발행 스테이블코인을 설계한 셈이다.
엄격한 KYC…기존 스테이블코인과 구조적 차이
홍콩의 스테이블코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신원 확인 규제를 적용받는다. HKMA 지침에 따르면 라이선스 발행 코인은 ‘신원이 확인된 지갑’으로만 전송이 가능하다.
약 8000홍콩달러(약 1000달러, 한화 약 148만 원) 이상 거래에는 ‘트래블 룰’이 적용된다. 이로 인해 스마트 컨트랙트 자체에 화이트리스트 기반 통제가 встро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는 자유롭게 전송 가능한 테더(USDT), USD코인(USDC)과 달리 ‘허가형 네트워크’ 성격을 띠게 된다.
CBDC 대신 스테이블코인…홍콩의 전략 변화
이번 정책은 홍콩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보다 민간 스테이블코인 모델을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11개 기관이 참여한 리테일 CBDC 파일럿에서 실효성이 제한적이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스탠다드차타드 CEO 빌 윈터스(Bill Winters)는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예금이 새로운 디지털 무역 결제 시대의 기반이 될 것”이라며 국경 간 거래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강조했다.
달러 중심 시장에서 ‘홍콩달러’ 성공할까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약 3100억달러(약 460조 원) 규모로, 대부분이 달러 기반이다. 유로화나 엔화 연동 코인은 상위권 진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홍콩은 규제된 은행 발행 홍콩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지역 무역 결제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동일한 금융기관이 동일한 규제 아래 새로운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는 셈이다.
다만 핵심 변수는 ‘네트워크 효과’다. 아무리 규제가 탄탄해도,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장악한 시장에서 비달러 코인이 유동성과 사용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