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점유 확대로 ‘통화 주권’ 약화 위험에 직면했다는 경고가 나왔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지연될수록 시장 주도권이 외국 발행사로 넘어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USDC·USDT 확산은 통제력 상실”
마이클 J 케이시(Michael J. Casey) MIT 디지털화폐 이니셔티브(DCI) 수석고문은 22일 열린 ‘2026 FIND·제27회 서울국제금융포럼’에서 한국이 써클의 USD코인(USDC), 테더(USDT)에 잠식될 가능성을 강하게 경고했다. 그는 “한국 전역이 외국 스테이블코인으로 뒤덮이면 정책적 통제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 발언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빠르게 달러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 속에서 나왔다. 현재 USDC와 USDT는 글로벌 결제 및 거래에서 사실상 ‘디지털 달러’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AI 시대, 통화 선택 기준도 바뀐다
케이시 고문은 특히 ‘에이전트 AI’ 확산을 변수로 꼽았다. 향후 자동화된 AI 시스템이 결제와 거래 주체가 될 경우, 각국 법정통화보다 ‘효율성과 유동성’을 기준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AI는 특정 국가의 화폐가 아닌, 각국이 경쟁력 있게 설계한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은 통화 경쟁의 방식 자체가 바뀌는 초기 단계”라고 진단했다.
지연되는 디지털자산 기본법…정치 변수도 부담
문제는 한국의 제도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근거를 담은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당초 2025년 발의가 예상됐지만 정치권 이견으로 6개월 이상 지연된 상태다.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제한, 발행 주체 규정 등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핵심 변수로 꼽힌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입법 논의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금융위원회를 배제하고 독자 입법을 추진하자는 강경론까지 나오며 정책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은행 중심 발행+규제 틀 필요”
케이시 고문은 해법으로 ‘엄격한 준비금 관리’와 ‘은행 수준 라이선스’를 제시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금융기관 수준으로 관리해 시스템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한국 금융당국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 중심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모델을 전제로 제도 설계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은 이미 제도화…한국만 지체
해외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지니어스법(GENIUS Act)’으로 스테이블코인 규제 틀을 마련했고, 유럽연합(EU)은 미카(MiCA)를 시행 중이다. 일본 역시 관련 법 개정을 완료했다.
시장에서는 특정 국가가 스테이블코인 공급을 장악할 경우 글로벌 자금 흐름이 해당 통화권에 종속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확산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금융 패권’과 직결된다는 의미다.
결국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속도가 한국의 디지털 금융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책 지연이 길어질수록 국내 시장 주도권이 해외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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