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에 가치를 연동한 스테이블코인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규제 미비가 심각한 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 금융에 가까워질수록 금융 시스템 리스크 역시 함께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프랑스 툴루즈대학교의 장 티롤 교수는 9월 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가 허술할 경우 극단적인 경우 수조 원 규모의 구제금융이 동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 투자자들이 이를 안전자산처럼 인식하게 되면, 가치 하락 시 대규모 인출 사태(이른바 뱅크런)가 벌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은 특정 화폐나 실물 자산, 대표적으로는 미국 달러나 미 국채에 가격을 고정해 발행되는 가상화폐다. 가격의 안정성이 특징이지만, 이런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분하고 안전한 준비자산이 필수다. 문제는 발행 기관이 수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고위험 자산에 투자할 유인이 커지고, 이로 인해 준비자산의 가치가 하락할 경우 투자 신뢰가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미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제도 내로 끌어들이는 지니어스 법이 지난 7월 제정되면서 스테이블코인의 유통 규모는 약 2천800억 달러(약 390조 원)로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를 주류 금융 인프라로 적극 수용하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화 움직임은 안정성 강화만큼이나 규제 공백 문제도 함께 안고 있다.
티롤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의 페그, 즉 자산과의 고정 가치가 무너질 경우 가격이 급락하고 손실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개인이나 기관이 이 가상 자산을 실질 현금처럼 여길 경우, 정부는 투자자 손실을 막기 위한 구제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요컨대 정부 재정이 민간 가상자산 손실을 떠안게 될 위험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는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려면 감독 당국이 기술적 인프라와 전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시장 감시에 대한 유인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미국 내 정책 결정자 중 일부가 가상화폐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거나, 이념적으로 이를 옹호하는 경우가 있어 철저한 감독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흐름은 스테이블코인이 점차 제도권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감독 체계를 어떻게 정비하느냐에 따라 향후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직결될 수 있다. 가상자산 시장이 성숙기로 접어든 지금, 규제와 자유의 균형을 놓고 정책 설계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