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원화 기반의 ‘K-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이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보관·관리 인프라, 즉 ‘커스터디’ 체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디지털 자산 정책 세미나에서는 금융, 학계, 산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K-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 방향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투자자 보호와 국제 경쟁력 확보라는 두 가지 과제가 핵심 주제로 떠올랐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실생활 금융 인프라와 연결되는 만큼, 이를 위한 제도적·기술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치를 고정해 변동성을 줄인 디지털 자산으로, 결제, 투자, 회계, 송금 등 실물 경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단순히 거래소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은행의 지급결제망, 증권사의 투자상품, 핀테크·클라우드 산업과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수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연합은 커스터디 기능을 전통 금융 수준으로 끌어올려 법제화했으며, 발행자와 수탁기관, 감독당국 간의 삼각 시스템을 갖춰 안정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커스터디는 고객 자산을 제3자가 안전하게 보관·관리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원래는 주로 대형 자산을 관리하는 기관투자자에 특화된 서비스였지만, 최근에는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 ICE 산하 백트 거래소 등은 이미 2019년부터 관련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업비트가 커스터디 시장에 재진출하면서 법인 고객 중심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는 이미 주요 국가들이 디지털 화폐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달러, 유럽은 유로, 중국은 디지털 위안을 앞세워 자국 통화 기반 디지털 자산 확장을 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K-스테이블코인을 세계 시장에서 신뢰받는 제도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국제 기준 충족은 물론, 회계, 법률, 외교, 통상 등 다양한 영역의 협력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K-스테이블코인이 단순히 거래소 중심의 상품이 아니라, 국민 자산 안정성과 글로벌 디지털 경제 내 한국 금융의 전략적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핵심 과제라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국회는 발행 인가, 준비자산 보유, 자금세탁방지, 공시 감사 등 세부 항목을 포함한 법안을 다수 발의 중이며, 금융당국은 이에 대한 실증 시범과 산업계 의견 수렴을 통해 제도화 작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움직임은 향후 디지털 화폐 기반 경제체제 전환기에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줄 수 있다. 다만 단순한 제도 도입을 넘어 업계 전반의 참여와 국제 협력까지 아우르는 종합 전략이 수반돼야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책 설계의 균형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