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철학적 뿌리로 알려진 ‘사이버펑크’ 운동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법률가이자 금융서비스 전문가인 비제이 셀밤은 신간 『비트코인 퍼펙트 바이블』에서 비트코인의 사상적 기반으로 사이버펑크 철학을 조명하며, 탈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의 미래 가능성을 제시했다.

사이버펑크는 1990년대 초 인터넷 확산과 함께 등장한 디지털 자유주의 운동이다. 중앙 감시 시스템의 확장을 경계하며, 개인 프라이버시를 기술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이 흐름의 철학적 골자는 ‘정보의 자유’와 ‘중앙 권력 배제’다. 1993년 발표된 ‘사이버펑크 선언문’에서는 “프라이버시는 비밀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자유”라고 정의한 바 있다.

사이버펑크의 정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비트코인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자산의 탄생으로 본격적인 결실을 맺는다. 당시 비트코인을 개발한 익명의 인물, 사토시 나카모토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무분별하게 돈을 찍어내고 금융기관의 위기를 국민 세금으로 떠넘기는 현실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다. 그의 구상은 제3자 개입 없이 개인 간 직접 거래(P2P)를 가능하게 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통화 시스템이었고, 그것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초기 단계부터 사이버펑크를 지지하는 세계 각국 개발자들의 협업을 통해 발전했다. 핀란드 개발자 마르티 말미는 사토시와 함께 코드를 개선하며 비트코인을 확산시키는 데 헌신했다. 특히 그는 초기 채굴로 얻은 비트코인을 기부하고, 거래소 설립에도 뛰어들며 수익보다는 탈중앙화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데 집중했다.

출간된 책에서는 비트코인을 단순한 투자 자산이 아닌 거대한 철학적·경제적 패러다임 전환의 도구로 해석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지난 15년간 수차례 반감기를 거치며 꾸준히 가치 상승을 기록했고, 최근에는 미국과 홍콩 등에서 상장지수펀드(ETF)로도 인정받으며 글로벌 자산 포트폴리오에 편입되고 있다. 미국 달러 중심의 글로벌 통화 질서에 대한 대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비트코인의 역할이 단순한 ‘디지털 금’을 넘어서, 글로벌 금융 권력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자산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이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해석하거나 법정화폐 시스템을 과도하게 부정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